매일신문

역사신문-궁궐에 어떤 사람들이 살까

궁궐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국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 이 중에서 내시(內侍)와 궁녀의 역할은 크다.

내시는 환관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정식 관직명은 내시이다.

환관은 고려시대 이래 궁중에서 잡일을 담당하는 고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궁녀는 국왕일가의 시중을 전담하는 궁중여관(宮中女官)으로 정 5품 상궁에서 종9품 주변궁까지 10등급이다.

퇴직하는 내시 상구와 궁녀 여옥을 통해 그들의 삶을 포착했다.

△내시 상구

일반인이 우리를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

한양 사람들은 가끔 효자동이나 강남 잠실에서 우리와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효자동에 우리들이 모여 사는 집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내시 중에는 출퇴근하는 내시도 있고, 궁궐에서 먹고 자는 내시도 있다.

효자동은 내시의 별칭인 화자(火者)를 본 따 화자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잠실은 국책 사업인 양장사업 지역으로 일꾼이 모두 여자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내시는 정부에서 파견한 감독관들이다.

여자들만 일하는 곳인 만큼 나와 같은 내시를 감독관으로 파견한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업무를 담당했지만 가장 오래 담당했던 일이 궁궐 음식물 관리였다.

30년 가까이 궁중에서 소비하는 음식물의 출입을 관리했다.

내 동료 내시들은 궐문수위, 청소, 잡심부름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우리가 담당하는 일은 많다.

궁중의 제사와 왕실의 재산 관리, 궁실의 각종 공사, 궁녀의 감독 등 궁중 내의 크고 작은 일에 모두 관여한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하는 일에 전문적 기술이나 학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왕 측근에서 일한다는 점에서 엄격한 자격이 요구된다.

고자면 누구나 내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내시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고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궁녀들과 자주 접촉하고 궁녀들과 마찬가지로 궁궐 안에서 숙식하는 만큼 여성과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료 내시들 중에는 선천적으로 고자인 자도 있지만, 가난 때문에 성기를 일부러 제거하고 내시가 된 사람도 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권력의 중심부에 접근하기 위해 거세한 자들도 있다.

이는 고려말기 환관들이 득세하면서 부를 누렸던 데서 비롯된 풍조다.

그러나 고려와 달리 조선은 내시들의 정치참여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종2품까지 오를 수 있지만, 종3품(당상관) 이상 진급에는 국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내시들 대부분은 하급직에 머문다.

나는 당상관까지 올랐으니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동기 내시들 중에서는 내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나는 효자동 사가에 처와 첩까지 두고 있다.

최근엔 아들과 딸 양자를 들이기도 했다.

돈도 꽤 모았다.

동네에서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집안 사람들도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다.

후배 내시들 중에는 나를 본받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나름대로 내시생활을 잘 했다고 생각한다.

△궁녀 여옥

나는 거의 평생을 궁궐의 지밀(至密)부서에서 일했다.

말 그대로 매우 비밀스러운 부서인데, 내 임무는 국왕의 잠자리 시중을 드는 것이다.

특히 국왕이 먹는 음식은 모두 우리가 이상유무를 검사한다.

지밀 부서 외에도 궁녀들이 일하는 부서는 많다.

임금의 수라상을 준비하는 소주방, 빨래는 담당하는 세답방 등 7개 부서가 있다.

모든 궁녀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젊은 시절 한때 국왕의 사랑을 받아 내명부(후궁)가 되고 나아가 빈(정1품)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생각이 변했다.

국왕의 사랑을 얻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게다가 국왕의 사랑을 좇다가 갖가지 고초를 겪거나 암투에 휘말려 죽음을 맞는 궁녀들도 보았다.

나는 왕의 사랑을 얻기보다 수석 상궁이 되기를 원했다.

다행히 나는 지밀부서에서 일했다.

지밀의 수석상궁은 모든 상궁 중에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퇴직 전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밀의 수석상궁 노릇도 했다.

웬만한 고관대작들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나는 4살에 궁궐에 들어왔다.

간혹 10살이 넘어 궁궐에 들어오는 궁녀도 있지만 대부분 4,5세에 입궁한다.

다른 궁녀들의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내 어머니도 내가 입궁한 후 뒷바라지하느라 고역을 치렀다.

빨랫감을 내가고 버선을 넣어주는 등 먹고 자는 문제를 뺀 거의 모든 뒷바라지를 했다.

참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나 내가 자라 큰 상궁에게 맡겨 진 후 어머니는 시름을 덜었다.

궁녀들은 좀 자라면 상궁이나 내인에게 맡겨져 자식처럼 교육받고 자란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궁녀들에게 일종의 양자와 같은 것이다.

상궁 밑에서 생활하면서부터 내 어머니와 아버지, 동생들을 좀 챙길 수 있었다.

양식도 대 주고, 패물과 옷감도 많이 갖다 주었다.

궁녀들은 입궁 후 15년쯤 지나면 결혼식을 올린다.

물론 신랑은 없다.

일종의 성인식인 셈이다.

성인식을 치른 후에는 마음에 맞는 궁녀와 한방을 쓰며 산다.

퇴직했으니 나는 이제 궁궐을 떠나 본가로 돌아간다.

궁녀는 늙고 병들면 본가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궁궐을 나가도 결혼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첩이 될 수도 없다.

궁궐에서 자라 궁궐에서 평생을 보내고, 본가로 돌아간 후에도 궁궐만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궁궐에서 보낸 세월은 참 길었다.

나는 궁궐 밖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지조차 이미 잊어버렸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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