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의도 편지-이상배 의원

물총새의 양보와 상생 지혜

제헌절이 함께하는 특별한 1주가 시작됐습니다.

17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으로 이곳 국회는 어느 때보다도 분주합니다.

잠시 창가에 서서 생각에 잠겨봅니다.

국회 의원회관 창밖으로 의사당 건물의 반구형 연녹색 돔이 시선을 잡습니다.

굵은 열주(列柱)와 높직한 기단(基壇)이 대형 청동 돔을 떠받친, 우리 전통의 목조 건축미를 곁들인 웅장한 현대식 석조건물이 장중하고 신비스러운 느낌까지 들게 합니다.

의사당 건물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건물을 둘러싼 8각의 24개 기둥(열주)은 24절기와 각각 대립하는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뜻합니다.

돔은 이 다양한 의견이 토론과 조정, 양보를 거쳐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로 의회정치의 본질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48년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1975년 의사당이 여의도에 자리 잡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의정사는 위엄과 권위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얼핏 우화 한 토막이 생각납니다.

먹잇감을 다투는 염소 두 마리가 깊은 계곡 외나무 다리 중간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먼저 건너겠다고 버티었습니다.

염소는 뒷걸음질을 치지 못하는 생체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먼저 도착했으니 내가 먼저 가겠다" "내 사전에 양보란 없다.

"

양보없는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악화됐습니다.

결국 두 염소는 발을 헛디뎌 외나무 다리에서 계곡 아래로 떨어지더니 거센 물살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다투지 않고 양보와 상생(相生)의 지혜를 발휘했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한쪽 염소가 양보해 다리 위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면 바위 능선도 가볍게 오르내리는 염소가 엎드린 염소를 뛰어넘어 다리를 건너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모습이 이같은 염소의 모습이 아닐까요. 대통령도, 국회도, 남과 북도, 수도이전 문제도, 방송도, 신문도, 이라크 파병도. 모두가 양보를 모른채 죽을 줄도 모르고 버티는 염소의 모습 말입니다.

국회의사당 너머 보이는 한강은 오늘도 도도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요즘 한강에 사라졌던 여름 철새, 물총새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는 소식입니다.

얼마 전 TV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된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물총새들의 행동은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먹이를 먼저 받아먹은 새끼는 다른 형제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맨 뒤로 가서 줄을 서면서 다시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은 중요한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으며, 이기기만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을 만나게 된다"(屈己者 能處重 好勝者 必遇敵)는 경행록(景行錄) 구절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월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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