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막화라고 불리는 백화현상(白化.갯녹음현상)이 청정해역 독도 앞바다를 황폐화하고 있다.
연안 암반에서 자라는 미역과 다시마 등 엽상체가 넓은 해조류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석회질로 구성된 무절산호조류가 흰색을 띠며 암반을 뒤 덮어버리는 백화현상은 한마디로 바다에서 살던 해조류가 '녹아 없어져 버리는' 셈이다.
해양생태계가 '에너지의 근원인 식물플랑크톤→ 동물플랑크톤→ 어류'로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숲이 사라진 사막에서 동.식물이 번성할 수 없듯이 백화현상이 빚어진 바다의 어류는 급속히 격감할 수밖에 없다.
청정해역으로만 알았던 우리국토의 애틋한 막내둥이 독도의 사막화는 시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할 뿐만 아니라, 어민들의 생계에도 적잖은 타격을 주고 있다.
◇독도 앞바다의 비극="5년 전에 비해 전복, 해삼, 성게, 소라 등의 수확량이 3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
"
1999년 영남대 해양과학연구센터 김미경 박사팀이 울릉도에 도착해 어촌계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던 푸념이다.
이 때 김 박사팀은 울릉도와 독도 연안을 둘러보고, 어민들의 한숨을 만들어 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수중과 연안 암반이 하얀 띠로 둘러싸여 있었고, 암반에 붙어 있는 파래, 개도박 등 해조류 엽상체도 이미 색소가 탈색돼 제모습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독도 역시 울릉도에서 볼 수 있었던 백화현상이 막 시작되는 초기단계였다.
그러나 2003년 여름의 독도 연안의 암반은 대부분 우윳빛으로 덮여 있었다.
무절산호조류조차 분홍색 색소를 완전히 빼앗긴 채 석회질 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과거에는 독도의 해조류 분포는 남해구나 제주구에서 분리된 독립구역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도 연안의 해조류 생태계가 바뀌고 종이 많이 감소되어 독도의 해조상이 심각한 해양오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해구나 제주구와 유사한 환경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
김미경 박사는 이 같은 독도 해양 생태계의 파괴가 독도 전체의 환경과 어민생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백화현상으로 인해 해조류의 엽상체 위에 알을 낳는 어류나 해조류를 먹고 사는 전복, 해삼, 성게 등이 먹이와 서식지를 잃게 되고, 또 연안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서 어획량이 감소되어 결국은 어민들이 큰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비극의 원인=학계에서는 백화현상의 원인을 복합적으로 보고 있다.
먼저 온실효과로 인한 수온의 상승과 수중으로의 이산화탄소 유입의 증가를 들 수 있다.
그 결과로 바닷물 속의 칼슘이온이 고체인 탄산칼슘으로 바뀌면서 이를 먹고 사는 무절산호조류가 잘 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해조류를 먹는 해양동물의 지나친 증식이나 담수 오염원과 함께 바다로 유입된 곰팡이나 병원성 해양미생물이 해조류의 서식을 방해한다는 가설도 있다.
하지만 백화현상의 정확한 메커니즘이 아직 밝혀지지 않아 한 번 파괴된 생태계의 회복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울릉도에서 92km, 포항에서 267km 떨어진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독도의 백화현상을 불러온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김 박사는 "독도 연안은 아직 청정해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며 "그런데도 백화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온실효과의 결과로 인한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와 수온상승이 중요한 원인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낮은 수온에서 대기 중의 산소가 물에 잘 녹는다.
따라서 수온상승은 용존산소량을 줄이는 반면, 수중의 수소이온 농도를 증가시켜 칼슘이온이 고체인 석회질(탄산칼슘)로 바뀌는 과정을 가속화 한다는 것. 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는 수중의 탄산이온 농도를 높게 만들어 탄산칼슘 합성을 촉진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대책은 없나=온실효과와 이로 인한 수온상승 및 수중의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독도 백화현상의 주요한 원인이라면, 사실상 국내에서 뚜렷한 대책을 세울 방법은 없다.
단지 석유 등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해 지구의 온난화가 가속화 되고, 이로 인해 우리 독도의 생태계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 뒤 지구환경을 지키는 전 인류의 노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생태적 측면에서 보면 지구는 하나이고, 모든 인류와 환경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류가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공동과제인 셈입니다.
"
하지만 독도의 해양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영남대 해양과학연구센터의 독도 조사에서 동도와 서도 사이, 선착장 가까운 지점에서 특히 백화현상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구온난화란 범지구적 문제에다 인위적인 환경오염까지 겹쳐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증거다.
김 박사는 "독도로의 잦은 입.출항과 선박 오폐수 및 기름의 유출, 생활오수,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쓰레기 등이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또다른 원인"이라며 "인위적 오염원을 최대한 줄인다면, 독도 연안의 자생력으로 해양 생태계가 어느 정도 복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용어설명
△엽상체=해조류는 육상식물처럼 잎, 줄기, 뿌리 등의 기관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대신 육상식물의 잎과 비슷한 모양의 엽상체가 있는데, 엽록소가 있어 광합성을 할 수 있다.
△무절산호조류=마디가 없는 산호초 모양의 홍조류. 수중 탄산칼슘이 증가하면 성장이 활발해져 다른 해조류를 못 자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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