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사람 모이는 도시로(4)-좋은 음식점, 공장 못지 않다

얼마전 파리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윤혜영(32·대구 수성구 범물동)씨는 여유있게 음식의 맛을 즐길 줄 아는 문화로 가득한 프랑스가 그립다고 말한다.

"한번은 프랑스인을 초대해 가지전과 볶음밥, 김치 등으로 식사 대접을 했는데 처음 먹어보는 한국음식을 거부하지 않고 맛을 음미하려는 진지한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피자와 파스타의 본고장 이탈리아. 프랑스 음식문화를 발전시킨 것은 이탈리아 사람의 힘이 컸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이탈리아인들은 지역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로 만든 자기네 음식을 최고로 치며 '슬로 푸드(Slow Food)'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세계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미국, 홍콩, 일본 등 국제화된 도시일수록 발전된 음식문화는 현지인은 물론 외지인의 발걸음을 즐겁게 한다.

◇대구에는 음식문화가 없다?

미식가인 김현철(43·대구 중구 대봉동)씨는 대구 음식에 불만이 많다.

서울에서 잠시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서울에는 중국·일본·동남아·유럽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전문 식당들이 많고 특색있는 한(韓)식당도 많은데 대구 음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외국인이 오면 뭘 대접할지 고민하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음식점 컨설팅을 맡고 있는 많은 전문가들도 지역의 음식문화 수준이 낮다고 입을 모은다.

"보수적인 지역민들은 늘 가던 식당만 가고 새롭고 특이한 음식을 받아들이기 꺼려해 파스타 전문점 등 새로운 식당이 과거보다 수적으로는 늘었어도 음식의 질적 수준이 서울의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현재 대구에서 3만여 군데의 식당이 영업 중인데도 마땅히 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역의 대표 음식으로 꼽히는 동인동 찜갈비, 따로국밥 식당들이 모여있는 골목이 형성돼 있고 들안길 먹거리 타운, 평화시장 닭요리 전문골목, 중리동 곱창마을, 갓바위·동화사 집단지구 등 특색있는 식당가가 형성돼 있으나 위생·서비스 등의 문제로 외국인·외지인들에게 지역 음식의 가치를 보여주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적잖다.

호텔에서도 격조높고 차별화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한국음식의 경쟁력

대구 음식이 먹을 게 없다는 지역민들의 불만과 달리 대구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평가는 대조적이다.

현재 대구 음식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외국인들이 많아 놀라울 정도였다.

세계 각국을 여행하고 서울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박탕 조르다니아(61) 대구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는 "한국음식이 세계 최고로 맛있고 대전, 포항, 부산 등 지방 음식이 약간씩 다른 맛으로 차이가 있지만 대구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말한다.

독일 출신의 볼프강 스퓌헬(63) 인터불고 호텔 총지배인은 "대구에 온 외국인을 데리고 여러 식당에 가봤지만 음식이 맛없다고 불평하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며 "대구 음식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들 외국인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맛보기를 원하는 음식은 다른 나라에서도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아니라 바로 대구에서 맛볼 수 있는 한식이었다.

한국음식에 대한 외국인의 만족도는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외국인관광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식당의 음식의 질에 대해 조사한 결과 '훌륭하거나 매우 훌륭하다'(63.0%)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아시아권보다는 미주·유럽권 외국인의 만족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의 나라, 국제외교의 중심지 미국 뉴욕. 중국·태국·일본·베트남 등 아시아 식당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곳에서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음식이 바로 한국음식이다.

뉴욕타임즈에는 '한국음식은 숨어있는 보물', '발견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음식' 등 뉴요커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한국음식과 한국식당을 소개하는 기사들이 잇따라 실리고 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는 한인식당들에서는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뉴요커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비빔밥은 음식 전문잡지 '푸드 앤 와인'에 최고 아시아음식으로 꼽힐 정도로 미국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금 떨어진 버몬트 애비뉴에 있는 '팬 아시안(Pan Asian)' 식당. 뷔페로 다양한 아시아 음식을 차려놓은 이 식당에서는 잡채, 김치, 고춧가루로 무친 숙주나물 등 한국음식을 접시 가득 담아가는 미국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에서 11년간 살았다는 박수지(39·대구 남구 이천동)씨는 "외국인들은 온갖 정성이 들어간 나물 음식에 매력을 많이 느낀다"며 "향과 양념이 발달한 한국음식은 약간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외국인에게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전통음식의 부가가치를 높여야

지난해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으로 발족된 (사)한국전통음식관광협회의 강민수 회장은 "우리 전통음식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홍보가 미흡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며 "우리 음식을 산업화하고 관광상품화해 세계에 알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단순한 먹을거리의 차원을 넘어 지역 음식문화를 잘 개발할 경우 막대한 문화적·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5월 서울 서초동 '베니건스' '마르쉐' 등 외식 패밀리레스토랑들 사이에 문을 연 최초의 한식패밀리레스토랑 '우리들의 이야기'는 한식을 세트메뉴화하고 지역의 특색있는 김치들로 샐러드바를 만드는 등 전통음식을 상품화한 시도가 눈길을 끈다.

김기희 경동정보대 식음료조리과 교수는 "IT 등 첨단산업분야는 산학협동으로 상품 개발에 힘을 많이 쏟지만 음식부문에서는 이러한 상품 개발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며 "약령시 한방음식 축제, 대구음식박람회 등을 솜씨 자랑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으로 개발된 음식을 상품화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다 안 되면 식당을 한다'는 식으로 음식업에 대한 낮은 인식도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외식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할 때 제반 서비스 개선 등 음식문화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잘 먹고 잘 산다'는 웰빙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 건강에 좋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 한국음식에 대한 높은 관심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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