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상이군경회 등 보훈단체 회원 3천여명은 의문사진상규명위가 간첩 등 비전향 장기수를 민주화 인사로 판단한데 대한 항의 집회를 벌였다.
참가자들은 대구시민회관 광장에서 규탄대회를 가진뒤 국채보상공원까지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대부분 장년 이상 노년층들이었다.
지난날 관 주도 집회에 참가해서 한가롭게 웃으며 따라다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분노가 배어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몸바쳐 지켜냈던 국가와 정부와 국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연도의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일부 나이든 행인이 띄엄띄엄 박수를 치기도 했으나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 청소년들은 비실비실 웃으며 가볍게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흔히 나타나고 있는 세대간 단절의 다른 모습이었다.
아니면, 고립의 모습이다.
국가와 국민 앞에 누구보다도 당당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고립무원의 이방인처럼 행진했다.
반향은 없었다.
1인 시위만큼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고립무원 이방인처럼
이들의 시위가 공허했던 것을 두고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거나 시대에 뒤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편리하게 결론짓고 넘어갈 수 있을까. 기성세대는 보수적이고 젊은이들이 진보적이어서 그렇다는 이분법으로 충분한가. 이념의 문제만은 아니다.
진보적입네 하는 대다수 젊은이들이 실제는 진보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진보주의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라면 내용도 모르고 그럴듯하게 여기는 신종 트렌드에 편승해 있을 뿐이다.
현재의 세대간 갈등과 노인, 기성세대의 고립은 다분히 정치 투쟁의 산물이고 정치적 필요에 의해 확대 심화됐다.
일부 정치세력이 집권을 위해 지역감정을 선동했던 것처럼, 일부 정치세력이 집권과 통치의 수단으로 세대간 대치국면을 조장한 측면이 강하다.
그런 전략전술을 극대화하는 과정에 이념이 덧씌워지고 북한과 친북세력이 적당히 역할해서 세대간 골이 깊어졌다.
지난 총선 당시 파문을 일으킨 열린우리당 대표의 노인 폄하 발언도 작은 단초다.
세대의 양쪽 당사자인 노인과 젊은이는 누구인가. 애비와 자식에 다름 아니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정치세력만 탓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이들을 질책한들 소용이 없다.
노인들, 어른들, 기성세대의 잘못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잘못 키웠다는 흔해 빠진 말이 진리다.
아이들을 위해 맹목적 헌신을 한 애비의 잘못이다.
세대간의 단절과 노인, 기성세대의 수난은 결국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애비는 아이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자신처럼 갖은 고난을 겪지 않도록, 떵떵거리며 잘 살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무한 감수했다.
애비는 아이를 배불리 먹이려고 자신의 배곯음을 숨겼다.
아이들이 걱정할까봐, 보릿고개의 실상을 설명하지 않았고, 전쟁의 발단과 처절한 살아남기 과정을 얘기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가난과 고난의 현실을 인식케 할 훈육의 기회를 방기했다.
그 결과, 세대간 이해를 공유할 부분이 없어져 남북, 동서간 보다 더 참담한 갈등과 단절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념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이전의 원초적인 문제다.
애비는 종이 아니었다
"쌀 없으면 라면 먹지 왜 굶어, 북한군을 이리떼로 잘못 알았다, 잘 살아보자고 땀흘렸다는 시대는 숨도 못쉬던 잔학무비의 시대 아니었냐" 고 아이들이 얘기할 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웃고 넘어간 것은 애비의 직무유기였다.
공교육이 그렇고 사교육이 그렇고 사회교육이 그렇듯이 애비의 자식 교육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
염천에 똥장군을 지고 헐떡이며 다락밭을 오르내리던 애비는 새까맣게 주름진 얼굴을 부끄러워 하지 말았어야 했다.
감추려하지 말았어야 했다.
서부 개척시대 미국의 아버지들처럼 엄격과 단호함으로 현실을 가르쳤어야 했다.
애비가 자신의 인생과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한 세대간 갈등과 장노년층, 기성세대 고립의 악순환은 되풀이 될 것이다.
특히 건실한 땀방울 한번 흘려보지 않고 이른바 '민주화'타령만으로 득세한 젊은 세대- 상대적 젊은 세대들은 아마도 그 후세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더 혹독한 극복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애비는 종이 아니었다.
당대의 주인이었고 지금도 종이 아님을 노래하라.
김재열(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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