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인 쿠로몬(黑門) 시장은 18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시장으로, 활기에 가득 차 있다.
쿠로몬 시장 180여개 상점 가운데 빈 점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시장의 활기를 대변해주고 있다.
쇼핑객수는 하루 평균 1만8천명, 연평균 15만명에 이른다.
대부분 상인들은 대물림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이 가운데 10여개 점포는 시장 형성 이후 한자리에서 가족들이 터를 잡고 있어 상인들의 시장 사랑도 남다르다.
지난 6일 오후 1시, 시장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더니 오후 4시를 넘어서자 저마다 자전거를 타고 장바구니를 들고 나온 남녀 쇼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섭씨 30도가 웃도는 더운 날씨이지만 천장에는 아케이드가 설치돼 있고 바닥은 보도블록으로 정비돼 있어 쇼핑하기에 쾌적하다.
"백화점보다 물건이 훨씬 많고 특히 생선이 아주 신선합니다.
가격도 싸기 때문에 대형슈퍼마켓이 아닌 시장에서 쇼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 쿠로몬 시장을 자주 찾는다는 에노모토(60'여)씨는 시장 예찬론자다.
쿠로몬 시장이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있는 이유는 현대화된 시설 덕분이다.
비가림 아케이드와 깔끔하게 정비된 바닥 덕분에 시장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쇼핑하는 쇼핑객들이 더 많을 정도이다.
시장 내에선 음악이 흐르고 진열대를 일정 선 안으로 규정해 서너명이 한꺼번에 지나가기 충분할 정도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쿠로몬 시장의 변신은 이미 50년 전부터 시작됐다.
상인들은 1955년 자발적으로 힘을 합해 시장 천장과 바닥 등 시설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도 70억원을 들여 일부 구간의 노후 시설을 교체했다.
10년 전부터는 국가 및 시 예산이 50% 지원되기 때문에 상인들의 부담도 훨씬 줄었다.
또 생선, 과일, 채소 등 상품의 질이 뛰어나 대형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 대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쿠로몬시장 상점가 진흥조합 사무차장 누카다(額田)씨는 "특히 생선은 새벽부터 가게를 열어 신선한 물건을 공급하고 다른 식품점들도 판매상품의 품질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모든 상품에 대해 가격 정찰제가 시행되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다른 점이다.
과일 하나, 생선 하나에도 가게마다 통일된 가격표를 붙여 상품을 믿고 살 수 있고 핵가족 시대에 맞게 소포장을 실시하고 있어 불필요한 소비를 최소화했다는 것도 특징이다.
'시장은 무조건 푸짐하다'는 인식 대신 필요한 것만 싼값에 구입할 수 있는 것. 즉석조리식품은 조리 과정을 공개하고 유리로 된 진열대를 사용, 위생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어 믿고 살 수 있다.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나 각종 이벤트는 대형쇼핑점 못지 않다.
일종의 포인트 카드를 발급해 시장을 자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도장을 찍어주고 도장 개수에 따라 할인혜택을 주는 것이다.
스탬프는 100엔당 1포인트씩 적립되는데, 스탬프 유효기간이 평생 보장된다는 것이 특징이며 상점가 진흥조합 스탬프 위원회가 이를 관리하고 있다.
쿠로몬 시장은 다양한 축제와 이벤트를 마련,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쿠로몬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의 축제인 여름축제는 인근 신사에서부터 시장 일대를 행진하며 시민들과 축제를 만들어간다.
쿠로몬시장 상점가 진흥조합 부이사장 야마모토(山本'63)씨는 "재래시장의 이점을 살려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에서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밀라노 시장과도 1999년부터 자매결연을 맺고 서로 상품을 소개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시장을 학생들의 체험학습의 장으로 제공, 미래 소비자인 학생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시장에 대한 친근감을 심어주는 것도 시장 활성화를 위한 노력 중의 하나다.
일본 오사카 재래시장의 이러한 변신은 쿠로몬 시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총 길이가 4km가 넘는 텐신바시(天神橋)시장은 아케이드가 설치된 것은 물론이고 각 구간별로 시장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내세워 상징화하고 있다.
시장 내부 구간은 진열대가 일정 선 밖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시장 역할과 동시에 시민들의 이동로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큰 시장뿐만 아니라 작은 시장도 탄탄한 저력을 갖고 있다.
비교적 규모가 적어 우리나라의 골목시장에 해당하는 다마츠쿠리(玉造) 시장은 도로가 상점가부터 시장 내부까지 아케이드를 설치해 날씨와 상관없이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재래시장의 변화와 경쟁력은 상인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기본이 됐지만 저변에는 재래시장을 보호하려는 정책적 배려도 뒷받침됐다.
오사카부 농림수산부 유통대책실 시장지도 담당 쿠니 사다(國定)씨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시장에 대한 각종 규제 사항을 풀어주는 쪽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래시장 경쟁력은 1차적으로 시장 논리에 맡기지만 대형유통업체들의 터무니없는 가격경쟁은 농림수산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감시 대상이 된다.
또 대형업체들과 재래시장은 같이 살아나가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공동발전을 위해 영업시간이나 휴일 등을 서로 조정해서 시행한다는 것. 이 때문에 무조건 큰 업체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쿠니 사다씨의 설명이다.
유통대책실 시장 지원을 담당하는 야마가타(山縣)씨는 재래시장의 앞날에 대해 "브랜드화만이 살 길"이라고 말했다.
"각 시장별로 시장 이미지를 브랜드화시켜 디자인이나 로고 등을 마련하고 홍보할 때 재래시장이 계속 활성화될 수 있을 겁니다.
"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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