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성인중의 하나로 추앙 받는 공자(孔子)가 만약 2천500년을 거슬러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을까. 대부분의 인생을 좌절과 유랑 속에서 살았고, 하는 일마다 실패를 맛봤으며, 수많은 제자들을 이끌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녔지만 정작 정치적인 부름은 없었는데….
일방적 예찬론이나 무조건적 깎아 내리기가 아닌 실증적 관점에서 공자를 바라본 책이 나왔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리라', 제목만 봐서는 실용서적 같아 보이지만 실은 공자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교양 서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공자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이상주의자였던 까닭에 번번이 좌절하고 실패만 곱씹었던 공자의 고난과 고뇌에 찬 모습은 오히려 신선함을 더한다.
◈결혼 기피대상자 1호?
원제가 '공자전'(孔子傳)인 이 책의 저자는 한자학에 정통한 권위를 가진 일본의 대학자인 시라카와 시즈카(95). 혹여 저자의 이름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면 도올 김용옥 교수 덕택이다.
30년 전 일본에서 출간됐던 이 책의 내용은 '도올의 논어 이야기'라는 TV방송강연을 통해 수 차례나 언급되면서 국내에 소개되기 전부터 화제가 됐었다.
특히 도올이 즐겨 인용했던 '공자의 무녀 사생아설'은 당시 국내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 유림으로서는 발끈할 내용이다.
"어떻게 우리의 위대한 성인이신 공자를 감히 아비의 이름도 모르는 무녀의 아들로 치부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 74쪽에는 이렇게 씌여 있다.
공자는 무녀의 자식이었다.
아비의 이름도 모르는 사생아였다.
마치 예수처럼 신은 즐겨 그런 자식을 선택한다.
공자는 그렇게 선택된 사람이었다.
신은 자신을 맡긴이에게 깊은 고통과 고뇌를 줌으로써 그러한 진실을 자각시키려 한다.
그것을 자각해내는 이가 성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생아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유림이 발끈할 정도로 공자를 비판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구간에서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를 천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저자는 오히려 "공자의 그런 빈천한 출생이야말로 위대한 정신을 낳는 토양"이라고 강조한다.
공자가 무녀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핏줄을 천대시한다기보다 공자의 삶에도 역경이 있었고, 그가 그것을 이겨냄으로서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는 것. 도올이 책의 숨은 뜻은 뒤로한 채 일부분만 인용하면서 논쟁의 불씨를 지핀 꼴이 아닐까.
"공자의 인격은 그의 일생에 완결된 것이 아니다.
그가 죽은 후에 차츰 고쳐 씌어졌으며, 마침내 성인의 모습에 어울리는 치장이 가해졌다.
사마천이 그것을 완성시킨 사람이었다.
" 우리 머리 속에 있는 공자는 사마천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이라는 저자의 주장 역시 이 책이 대중적인 동시에 논쟁적인 책으로 비치게 하는 이유다.
또 저자가 후세에 의해 치장되거나 오용되지 않은 공자 본래의 인간적인 모습을 찾아 나서게 된 이 여행의 동기이기도 하다.
◈치장되지 않은 본래의 모습
'전혀 다른 공자 이야기'라는 부제나 저자가 여러 문헌들을 뒤져 소개한 공자 비판 글 등 언뜻 보면 이 책은 문자학, 문헌학, 문화인류학의 지식을 총동원해 공자와 그의 사상을 발가벗기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기존의 것을 거스르며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요즘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려는 의도에서 나온 듯하다.
하지만 꼼꼼히 뒤적이다보면 이 책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공자 찬양서다.
다만 저자는 그동안 공자에 대해 몰랐거나 간과했던 새로운 모습을 통해 그를 추앙하고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또 기발한 소재와 내용에 비해 현학적인 문장과 지나치게 학술적인 형식으로 서술하는 바람에 이해력을 떨어뜨리는 것도 아쉽다.
정독을 하더라도 페이지 넘기기가 힘에 부친다.
여기에 쉽게 눈길이 가지 않는 제목에다 노학자가 풀어 가는 옛 인물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애정이 있는 독자가 아니고서는 읽어 내려가기 다소 버거운 느낌이다.
저자도 이런 점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책 말미의 글에서 옛 것에 대해 무관심한 요즘 세대에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나는 올해 설날 이른 아침 타이베이의 공자묘 앞에 서 있었다.
그가 위대한 이유를 요 몇 년간 계속 생각해 왔는데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왔다.
참배객은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고 있는 어느 노부인 외엔 없다.
아니 두 명이 더 있는데, 이 사내아이들은 다리를 뻗고 무심히 지껄이고 있다.
위대한 성인은 안중에도 없는 듯" 점점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는 공자를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책을 덮고 머리속에서 저자를 떠나보내자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유머 한토막이 생각난다.
'요즘 여자들이 결혼상대자로 공자를 기피하는 이유는?, 첫째 대머리다.
둘째 충, 효를 너무 강요한다.
셋째 돈은 못 벌면서 제자들만 수두룩하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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