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사형제도

프랑스 혁명이 진행 중이던 1792년 의사이자 국민회의 일원이었던 길로땡이 칼날로 사람의 목을 단숨에 자르는 길로틴을 고안했다.

혁명정부가 모든 사형(死刑) 집행을 이 기계로 해야 한다는 법 제정 이후 수많은 왕당파.혁명가.시민들이 길로틴에 의해 목이 잘렸다.

당시 이 절두형 사형집행은 그 이전의 방법보다 고통을 크게 줄였다는 점에서 인도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 방법을 과연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수형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절두형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야만적이지만, 교수형도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덜 야만적이라고 하더라도 고통을 더 많이, 오랫동안 주고 있지 않은지 지금의 문명 수준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이제 우리 사회도 사형집행 방법에 앞서 사형제도 그 자체가 반인도주의성을 갖고 있지 않은지 의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사형은 오판시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낳게 마련이다.

범죄 억지효과도 의심스럽고, 현대사에서 경험했듯이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복수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적지 않다.

범죄자에 대한 피해자와 사회의 공분이 그들의 죽음을 요구하는 건 '본능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직접적 본능 표출의 순치 방법을 생각해볼 필요는 있으리라.

▲최근 여당이 사형제도를 없애는 대신 현행법에 없는 종신형제를 도입하는 특별법안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 유인태 의원을 대표 발의자로 8월중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방침인 모양이다.

이 법안은 15, 16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으나 법사위원들의 반대로 법사위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아무튼 이번에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될는지 귀추가 주목된다.

▲18세기까지 사형은 보편적으로 집행되던 극형이었다.

19세기엔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20세기 후반에는 사형 폐지론이 나오고, 폐지한 나라들이 훨씬 많아졌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이 제도에 대한 찬.반 양론이 만만치 않다.

성서에는 천하보다도 귀한 게 사람의 생명임을 강조하고 있듯, 생명은 존엄하고 귀하다.

차제에 사형제도와 상관 없이도 생명의 존귀성에 대해 깊이 자성해 봐야겠다.

이태수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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