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토란잎에 물방울처럼

토란(土卵)은 '흙에서 캐는 알'이라는 뜻이다. 흙에서 얻는 식품이 토란말고도 많은데 굳이 토란이라는 이름을 얻은 데는 땅에 묻힌 덩이줄기의 생긴 모양도 그렇지만 버릴 것 없이 옹골차게 다 먹을 수 있어서 오지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토란은 토련(土蓮)이라는 이름을 하나 더 가졌다고 하는데 두 이름 모두 어쩐지 여인을 떠올리게 한다.

올 봄에 우리 집 돌담 아래 토란을 심었다. 밑거름을 넉넉히 넣은 땅에 씨를 묻고 매일 물을 주었더니 싹은 잘 자랐다. 곧게 뻗은 잎자루는 대나무를 연상하게 하고 연잎처럼 늘어진 커다란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릴 때면 여인의 치마가 생각난다.

마른 날의 토란잎은 비스듬히 누워있지만 비 오는 날에는 열두 폭 치마에 숨은 솔기 같은 잎맥을 선연히 드러내며 수직으로 귀를 고고하게 세운다. 바람이 살랑 어루만지면 저희끼리 부딪치며 파문이 되어 출렁이는 모양이 참으로 아름답다.

가파르게 선 잎사귀 위에서 빗방울이 급하게 흘러내리며 깨어지면 물 알갱이는 햇살처럼 반짝이면서 흩어진다. 잎사귀에 구르는 물방울은 마치 수은처럼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 구슬을 수없이 만들다가 떨어지지만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는다.

잎은 한 방울의 물도 흡수하지 않고 한 점 낭비 없이 고스란히 뿌리로 공급하는 것이다. 토란은 물을 아주 좋아하는 성질임에도 잎에서는 철저히 거부하며 뱉어내는 모양이 조금은 앙큼해 보인다.

옛 할머니들은 말씀하셨다. '여자는 토란잎에 물방울 같아야 한다.' 설마 앙큼한 여자가 되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나온 흔적도 남기지 않는 잎사귀 위의 물방울처럼 항상 단정하게 살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똑 떨어지는 여인이 되라는 뜻이겠지만 중요한 일은 흔적도 없이 비밀스레 하라는 이르심이 담겼는지도 모른다.

그 이르심은 조선시대 저 사대부가의 여인들에게 당부하던 말이었다고 한다. 가문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이라면 집 안팎으로 입단속을 시키고 밖으로 새나가지 말아야 할 비밀이 운무(雲霧)같이 집을 싸고 있어도 무표정으로 드러내지 않고 살던 여인들에게 준 교훈이었다.

조선 여인들이 살던 모습을 돌아보면 토란과 닮은 점이 참 많다. 단정하게 쪽찐 머리의 고운 두상을 떠올리게 하는 잎새에 구르는 물방울과 폭 넓은 치마를 닮은 잎사귀, 뿌리로만 빗물을 부지런히 나르는 잎사귀의 헌신과 비밀스러움, 고고하게 선 기품 있는 모습까지 사대부가의 여인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정절과 가문을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끊을 각오로 은장도를 품고 살았던 여인들의 가슴엔 덩이줄기가 감춘 독(毒)보다 더 무서운 독이 응어리져 있지 않았을까. 한여름 뙤약볕을 견디며 도도하게 서 있는 토란은 '관이 향기로운 사슴'처럼 어쩐지 귀족이었을 것만 같다.

이렇게 귀티 나는 토란을 두고 내려오는 또 다른 말이 있다. '알토란 같다' 부실한 데가 없이 옹골차다는 뜻이다. 그 비유는 이제 갓 시집온 새댁에게 많이 썼다.

그러나 사대부 집 너른 대청마루를 오가는 여인이 아니라 여염집 부엌문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참한 새댁을 일컬었던 말이다. 어느 집 여인이든 다소 만만히 보이는 사람에게 주는 비유이지 솟을대문을 나오는 여인을 보고는 감히 입에 올릴 수 없었다.

껍질을 깎아낸 알토란에는 더 이상 독이 없다. 땅속줄기에 독을 품고 고고하게 살아있는 토란은 안방마님에게 어울리는데 반해 밥상에 올리기 위해 감춘 독을 깎고 물에 담가 둔 알토란은 토담집 며느리에게 비유되었다.

같은 토란을 두고 한 말이건만 그것이 삶과 죽음 그리고 독이 '있음'과 '없음'의 상태에 따라서 그 말에 비치는 사람들의 신분이 나뉘어지는 것을 헤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헤아림 속에서 서슬 푸른 양반들의 삶과 고달프게 살다 간 민초들의 죽음을 다시금 엿보게 한다.

신복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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