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파이팅-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국민의 기대 속에 출범한 17대 국회가 지난 달 29일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킴에 따라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이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정당들은 지난 4월 총선 때만 해도 면책 특권 제한, 불체포 특권 포기 등의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았으나, 정작 당선이 되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의미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은 헌법 44조1항에 의해 보장된다.

현행범이 아닌 한 외기 중에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고,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 국회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에 석방되는 특권이다.

17세기 영국에서 왕권에 대한 의회의 권리 보장을 위해 처음 법제화된 뒤 미국 연방헌법에 의해 성문화하면서 각국 헌법에 수용됐다.

면책특권과 함께 불체포 특권이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것은 국민의 대표이자 헌법기관의 구성원으로서 국민의 뜻과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국회의원이 자주성과 독립성을 확보해야 헌법상 권한을 적절히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엄 하에서 국회의 체포동의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헌법상의 계엄해제 요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현행범이 아니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제한 이유

불체포 특권을 제한하자는 여론이 이는 것은 국회 스스로 지나치게 남용해왔기 때문이다.

'방탄국회'라는 말이 일반화된 것만 봐도 비리나 불법을 저지른 동료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가 이를 얼마나 마구잡이로 악용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15대 국회(1996~2000년) 때는 12건의 체포동의안이 제출됐으나 모두 부결 또는 폐기됐다.

16대 국회(2000~2004년)는 15건의 체포동의안을 모두 쓰레기통으로 집어넣었다.

특히 지난해 12월 비리 혐의자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무더기로 부결시키고, 나아가 지난 2월엔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서청원 의원에 대한 석방요구안을 가결시켜 풀려나도록 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는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른바 빗나간 특권 의식이라는 것이다.

특권을 함부로 사용한 결과 부당한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보루를 스스로 잃어버리는 결과를 자초한 셈이다.

◇제한의 범위와 방법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어떻게 제한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 헌법학자들은 법률 개정으로 이를 제한하면 위헌 소지가 있으므로 헌법을 세분화하는 개헌이 적절하다고 지적한다.

또 국회 윤리위원회의 기능을 강화시켜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자는 제안도 있다.

그러나 헌법 자체에 내재적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따라서 법률 개정을 통해 제한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정치권에서는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보고된 뒤 일정 기간 내에 가부를 결정하도록 하거나 투표 방식을 기명 또는 공개 투표로 전환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구속된 의원에 대한 석방결의안 발의 요건도 현행 20명에서 재적의원 4분의1로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대한변협은 헌법이 아닌 국회법 개정을 제안하고 있다.

체포동의안이 7일 이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가결된 것으로 간주하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체포동의안과 석방동의안 심사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것 등을 골자로 개정안을 마련했다.

국회의원의 특권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것은 세계 공통의 추세이지만, 많은 나라에서는 이를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헌법에서 '내란죄, 중죄 및 치안위반죄'에 해당하는 경우 불체포 특권을 제한하고 있다.

영국도 마찬가지. 일본의 경우 검찰의 '체포허락청구'를 1~3일 내에 가결하도록 함으로써 특권을 남용하지 않는 전통을 의회 스스로 확립했다.

◇관련 문제-동의안 자수 파문

박창달 의원 체포 동의안 부결 이후 열린우리당에서 다소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열성 당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찬반 여부를 양심 고백하라고 압박을 가한 것. 수십 명의 의원들이 찬성 또는 기권했다고 밝히면서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자수 파문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정당 보스의 의중을 좇아 일사불란하게 행동했던 과거와 비교할 때, 국회의원들이 자유투표를 한 뒤 당원들의 요구에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의원들의 정치적 판단이나 결정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이 당 내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옳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해도 당원들이 개별 의원들에게 기한을 정해놓고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구민의 의견이나 여론을 떠나 소신껏 투표하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고, 비밀투표라는 민주주의 원리까지 깨 가며 마녀사냥을 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각 의원이 국회 내 표결과정에 내린 정치적 판단이 당원이나 유권자들의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사안에 따라 공개하거나, 국회 기록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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