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안병영 교육부장관이 '교육가족'들에게 '학업성적 평가와 관련해 말씀드리고, 아울러 고견을 듣고자' 하는 글을 e메일로 띄웠다.
안 장관은 절대평가 요소만 반영할 경우 '쉽게 출제해 좋은 성적 주기' 현상을 방지하기 어렵고, 상대평가 요소만 반영하면 '학생간의 과다한 경쟁을 유발'한다고 전제한 뒤 각각의 장단점을 고려해 학교 성적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교육 문제에 대해 교육계에 의견을 묻고 건의를 듣는 태도는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다.
현 내신성적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 역시 응당 교육부가 할 일이다.
그러나 가까이 보건, 멀리 보건 안 장관의 이번 글은 안타까움을 넘어 심각한 우려를 던져준다.
가까이 본다면, 왜 이제 와서야 교육계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 하느냐는 점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안 장관은 취임 초기부터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이는 대입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하며, 8월말까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08학년도 대입 제도를 내놓겠다고 밝혀왔다.
이번 글에서조차 8월쯤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발표를 불과 한 달 남긴 시점에서 왜 이런 글을 교육계에 띄웠을까.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교육부가 아무리 고민해도 적절한 방안을 찾지 못했거나, 아니면 발표를 앞두고 거치는 요식행위쯤으로 여기거나. 교육계에서는 "요식행위라면 참으로 치졸한 것"이라며, 방안을 찾지 못한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어쨌거나 걱정스런 일이다.
멀리 보자면, 교육부의 근시안적 정책 태도와 정치권의 무관심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안 장관은 취임 이후 유난히 급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 장관 재직 때 못한 일들에 미련이 남아서인지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사교육비 문제 해결책으로 EBS 수능강의에 '올인' 하는 것 하며, 내년에 고교에 입학할 학생들부터 적용되는 대입제도를 당장 뜯어고치겠다는 것 하며, 백년대계를 책임지는 교육부 수장으로서의 진중함과 비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즈음에 정치권은 행정수도를 둘러싼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국가의 희망과 미래를 좌우하는 교육 문제는 거들떠도 안 본다.
행정수도를 옮기든 안 옮기든, 그 행정수도를 이끌어갈 미래의 동량들을 길러내는 일에 소홀하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교육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각기 다른 철학에 의해 각기 다르게 추진되는 정책에 참으로 오래도록 시달려왔다.
단명(短命)하기 싫어서 혹은 바뀌기 전에 뭔가 해 보려고 발버둥치는 허깨비 놀음에 엄청난 자원을 낭비해왔다.
이제는 때도 맞지 않는 편지글 하나가 아니라, 진심으로 교육계와 국민들의 고견을 듣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장관을 만나고 싶다.
눈앞의 이익에만 이전투구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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