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복싱 산증인 김재한 교사

"33년 복싱 인생 후회는 없어"

"7년간은 선수로, 27년 동안은 지도자로 한 길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복싱은 내 인생의 동반자였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

경북 복싱의 산 증인이자,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경산 장산중 김재한(金在漢.52) 교사. 16~18일간 영주복싱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경북 복싱선수권대회에 1, 2학년 5명의 선수를 출전시킨 그는 33년간의 '복싱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오는 9월 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어 복싱감독으로는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기 때문. 고향이 청송인 김 교사가 복싱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68년 성광고에 진학하면서부터. 평소 운동을 좋아했고, 승부욕이 남달랐던 그는 고교 입학 얼마 후 학교 앞 국일체육관의 김달원 관장을 찾아가면서 복싱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당시 '운동 선수가 되기 전에 사람부터 되라'는 김 관장의 가르침을 지금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일반 입시를 통해 영남대 체육학과에 진학한 그는 경북대표로 전국체전에서 동메달도 따고, 신인대회 우승도 했지만 복싱선수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도자 생활로 그의 복싱 인생은 활짝 열렸다.

대학 졸업 후인 1978년 문창고 복싱부를 창단, 첫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복싱계를 놀라게 했다.

2년 후에는 안동공고 복싱부를 창단, 또다시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제자 김응희를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시키는 등 '우승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는 지난 81년 경북체육중.고교로 옮기면서 지도자로 전성기를 맞았다.

박덕규(91세계선수권 은메달), 이재혁(88올림픽 동메달), 박세종(아시아선수권 3연패) 등 국가대표 선수만 10명을 배출, 한국 아마복싱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이 같은 공로로 지난 90년 경북교육상과 경북 최고체육지도자상을 한꺼번에 차지하는 영광도 안았지만, 시련도 있었다.

당시 복싱연맹 관계자의 독선적 연맹운영과 불공정 판정에 항의했다가 두 차례나 징계를 받기도 했다.

1991년 울릉종고로 근무지를 자원, 복싱부를 창단한 그는 섬소년 김시현을 경북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시켜 연일 전국 매스컴을 타는 등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96년엔 장산중에 복싱부를 창단, 복싱인생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전국대회 규모에서만 단체 우승 두 차례를 비롯해 금메달만 10개를 땄다.

특히 전국소년체전에서 경북 복싱이 단체우승 4연패를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운동을 통해 먼저 인격을 수양하고, 스포츠정신으로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복싱에 대한 저의 신념이었습니다.

"

그는 올해로 8년째 경북 복싱연맹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으면서 과거 불공정한 판정의 폐단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애정을 쏟는 만큼 성과가 나온다"고 강조한 그는 "일선 지도자의 길은 떠나게 됐지만, 복싱 발전을 위한 후원자로 복싱계를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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