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마음의 무더위'

1975년 상영된 미국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Dog Day Afternoon)'는 그보다 3년 전에 뉴욕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폭염이 쏟아지는 한여름 어느 날 한낮에 은행 털이 2인조 범인과 경찰 사이의 숨가쁜 대치와 긴장을 밀도 있게 그려 아카데미상 각본상을 받았다.

특히 동성애 애인의 성전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은행강도가 된 불쌍한 청년 역을 맡은 알 파치노의 명연기는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그와 비슷한 일들이 현실화될까 두렵다.

▲무더위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가 하면, 해마다 가공할만한 재앙들을 낳았다.

그런 천재지변이 아니더라도 높아진 불쾌지수 때문에 사람들이 이성마저 잃은 채 끔찍한 사건을 빚기도 했다.

영국 사람들은 7월 초에서 8월 중순까지를 '개의 계절(Dog Days)'라고 부르며 경계의 고삐를 당긴다지만, 무더위 속에서는 불쾌지수를 잘 다스리는 슬기가 요구된다.

▲대구는 우리나라의 무더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42년 8월 1일엔 섭씨 40도까지 올랐고, 같은해 7월 28일 39.7도, 13일 39.6도였다.

역대 이 기록의 1.2.3위를 대구가 모두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 이후에도 대구는 77년 7월 31일 39.5도, 94년 7월 21일 39.4도, 95년 8월 14일 39.2도 등의 기록을 세웠으며, 올해도 그에 버금가는 '찜통더위'가 예고됐다.

▲대구기상대는 지난 주말 장마전선이 소멸되면서 오늘부터 본격적인 무더위가 며칠 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23일까지 대구의 낮 최고기온이 34도 안팎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을 것으로 보이며, 불쾌지수도 치솟을 거라고 한다.

아침 최저기온이 25도를 넘나드는 열대야 현상도 지난 13, 18일에 이미 나타났으며, 23일까지 이어질 모양이다.

경북의 대부분지역들도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예상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시 '가을날'에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다"고 썼다.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어 과실들을 익게 하고,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을 스미게 해 달라고도 기원했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한여름이 더욱 두려워진다.

우리는 지금 엽기적인 살인마를 지켜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지만, 대자연의 무더위뿐 아니라 위험한 '마음의 무더위'도 슬기롭게 이겨내야겠다.

이태수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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