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도 짓기 어려운 판에 정부에서 돈을 준다고 해서 얼른 과원폐업 지원사업을 신청했습니다.
" 요즘 복숭아 주산지인 경산.청도.영천지역 농민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이달 말까지 신청을 받는 과원폐업 지원사업은 정부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과수재배업을 계속하는 것이 곤란한 농업인에게 폐업지원금을 주고 과수산업의 구조조정을 하자는 목적으로 시행하는 것. 그러나 사업 신청을 받기 시작하면서 각종 문제와 부작용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신청 양극화 현상
정부(안)는 올해부터 2008년까지 5년간 시설포도, 복숭아, 키위 등 3가지 품목에 대해 해당 과원 전체를 폐원할 경우 10a(300평)당 시설포도는 1천31만5천원, 복숭아 344만7천원, 키위 414만8천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일선 시.군 모두 복숭아는 신청자가 넘쳐나고, 시설포도는 거의 없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19일 현재 경산시에는 모두 980여농가가 330ha를 폐원하겠다고 신청했다.
이 중 시설포도는 전체 재배면적 60.6ha(172농가) 가운데 3.8%인 9농가 2.3ha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복숭아다.
용성면 윤병구(73)씨는 "가뜩이나 나이가 많아 복숭아 농사를 짓기가 어려운 판에 정부에서 제법 많은 돈을 준다기에 1천350평을 폐원하려고 신청했다"고 말했다.
담당 공무원들은 "고령화에 따른 일손 부족과 복숭아 가격의 하락으로 복숭아 폐원 신청 농가가 많다"며 "전체 신청자의 60~70%는 60대 이상 고령농이고, 나머지 20% 정도는 부재지주"라고 했다.
이에 비해 시설포도 농가 신청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경산시 남산면 김원배(45) 산업경제담당은 "시설포도는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드는데다 아직 수익성도 높아 폐원 신청이 세 농가밖에 없다"고 했다.
영천시도 19일 현재까지 폐업지원 보상금 신청이 북숭아는 308ha에 이르지만 시설포도는 전체 재배면적의 10%도 안되는 6.4ha에 불과하다.
청도군도 신청 마감일인 이달 말까지 전체 복숭아 재배면적의 30% 이상이 폐원 신청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5년째 시설포도를 재배하는 김치호(45.영천 금호읍 원제리)씨는 "당초 FTA 비준으로 위협을 받았지만 우려했던 만큼 가격 하락이 없고, 아직 수입이 다른 작목보다 괜찮기 때문에 신청이 저조한 것 같다"고 했다.
▨지원사업 문제점
과원폐업 지원사업 대상자는 '지원대상품목 고시일(2004년 5월24일) 이전부터 당해 품목을 생산하던 과원(과수목)을 계속 소유하고 있는 농업인 등으로서 과원 전체를 폐원하거나 전업 농업인에게 양도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 때문에 한창 수확할 수 있는 6~9년생 복숭아 나무도 폐원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
18년째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이상봉(53.경산시 자인면 계남리)씨는 "한창 수확을 하는 과수원 1천여평은 계속 농사를 짓고, 노후 과원만 폐원하고 싶어도 규정상 전체 폐원만 인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두 폐원하겠다고 신청했다"며 "일부 폐원도 보상 범위 내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산시 농업기술센터 이형호(46) 지도사는 "눈앞에 보이는 지원금에 너무 욕심을 내는 바람에 정부가 당초 기대했던 취지와 다르게 일단 신청해 놓고 보자는 식으로 잘못 가는 것 같다"며 "5년간 실시하는 만큼 향후 1, 2년간 추세를 지켜보다가 그 이후 판단해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특히 직접 경작을 하지 않는 토지와 과수목 소유자인 부재지주들은 대부분 이번 기회에 폐원을 신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인면 김종대 담당자는 "FTA기금이 토지.과수목 소유자 중심으로 지원돼 해당 작목을 재배했던 상당수 영세 임차농들은 실질 혜택은 전혀 없이 재배 기반만 잃게 된다"며 "게다가 임차료마저 크게 올라 가난한 농민들은 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의 올해 이 사업 지원계획은 폐원 214억2천만원(500ha), 양도가 19억4천800만원(132ha) 등 모두 233억6천800만원(632ha) 뿐이다.
복숭아 주산지인 청도.경산.영천지역에서만 폐원신청 면적이 1천200여ha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지원에서 제외되는 농민들의 반발도 적잖을 전망이다.
▨ 보완책 마련 필요
경산시 농업기술센터 이형호 지도사는 폐원 후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이 지도사는 "폐원 2, 3년 후엔 복숭아 재배면적은 크게 줄어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 폭등이 예상된다"며 "또 보상을 받고 폐원한 농가는 향후 5년간 같은 품종 대신 대체작목을 재배해야만 하기 때문에 대추, 자두 등 일부 작목의 과잉생산으로 가격폭락이 벌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된다"고 했다.
김원배 담당도 "부재지주와 임차농민 간의 분쟁 예방을 위한 규정 마련과 일정 기간 이상 경작자에 대해서만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세부 기준 등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농림부 관계자도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농가들이 폐업지원사업 신청을 했다"며 "기금이 부족할 경우 소득보전을 위한 기금 139억원 등을 전용, 우선적으로 지급할 방침이지만 신청 물량이 너무 많을 경우엔 내년 사업으로 늦춰질 수도 있다"고 했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영천.이채수기자 c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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