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 마치면 이발 봉사" 청소차 운전기사 강현석(52)씨

"있는 기술 묵혀봐야 뭐합니까. 깔끔하게 다듬어진 머리를 보면 막 청소를 끝낸 것처럼 개운하지요." 대구 수성구청 청소차 기사 강현석(52.대구시 북구 검단동.기능직 9급)씨는 직업이 두개다.

쓰레기 수거가 끝나는 오전 11시쯤이면 그는 수성구 범물동의 청소차 차고지 마당 한 켠에 마련된 '무료 이발소' 문을 연다. 누군가 내다버린 장롱 문짝을 주워 얼기설기 지붕을 얹은 이발소. 한평이 채 안된다.

"강 기사, 일 마치고 시간 됩니까", 새벽 4시부터 함께 땀을 흘린 동료들의 은근한 요청이 있으면 두 말 않고 미용가방을 꺼낸다.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 3~4명을 뒤로 한 채 이발 보자기를 씌워놓고 가위질을 하는 모습은 여느 이발소 풍경과 다름없다. 다 깎은 머리카락을 자동차 에어콘프레샤로 훅 날려 털어주면 이발 끝. 손님도 이발사도 땀이 줄줄 흐른다.

"밖에서 깎으려면 8천~1만원은 줘야 하는데 우리한텐 큰 돈이죠. 그 돈으로 애들 공책 사주라고 해요." 손님들의 말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매주 20~30명의 머리를 다듬는다.

강씨의 단골은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운전기사뿐 아니라 경로당 어르신, 실직자, 장애인 등 다양하다.

동료 기사 허재중(45.기능8급)씨는 "7,8년간 단골이 되다보니 다른 이발소를 가는 것이 낯설 정도"라고 했다.

지난 83년 환경 미화원 일을 시작, 청소경력 20년째인 강씨가 빗자루 대신 '바리깡'을 든 이유는 순전히 IMF때문. 그는 30여년전 대구역 앞 이용학원에서 3개월 속성으로 배운 이발기술을 발휘해 실직한 이웃과 노인분들의 '전속 이발사'로 나섰다. 병으로 바깥 출입이 힘든 이웃도 그에게 머리를 맡겼다.

이발봉사뿐만 아니다. 재활용 수거를 하면서 쓸만한 옷가지나 신발은 집에 가져와 깨끗이 손질한뒤 보육원이나 양로원에 전달하기도 한다. 대구 북구 매천동 농수산물시장에서 팔다 남은 옥수수를 얻어와 보육원에 전해주기도 했다.

이런 강씨의 이웃사랑 뒤에는 힘든 인생역정이 있었다.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형님을 따라 환경미화원이 됐다. 일당 6천10원을 받고 연탄재를 뒤집어쓰며 시작했지만 그 일 덕분에 대학을 나온 큰 딸(32)은 동사무소 사회복지직 공무원으로, 아들(29)은 전동차 조립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으로 어엿히 성장했다.

"퇴직까지 4,5년 남았네요. 퇴직하고 나면 병원을 다니면서 형편이 어려운 장기입원환자들의 머리를 깎아주며 말벗이나 되고 싶습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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