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사람 모이는 도시로-(9.끝)대구 사람 이런 점은 변해야

'끼리끼리'문화에 타인은 설자리 없어

"깊이가 있다", "오래 사귈수록 맛이 난다", "겉으로는 무뚝뚝해도 속은 한없이 따뜻하다", "처음 사귀기가 힘들지 한 번 사귀면 속을 다 내준다.

"

대구사람의 특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대충 이런 것들이 20~30년 전 대구가 '잘 나갈 때' 대구 사람을 이야기하면 으레 뒤따르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훨씬 더 많이 거론된다.

예전에는 미덕처럼 이야기되던 것이 이제는 결점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불친절하고 권위주의적이다", "대화와 토론을 싫어한다", "다양성을 싫어하고 튀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대구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지역주의의 본산이라는 비난도 들었지만 대구사람들을 바라보는 외지인의 시각이 이처럼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70~80년대 인기있는 배우자감이라던 대구 사람들이 이제는 기피 대상이 됐다'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과연 대구와 대구사람들의 현주소가 이럴까. 사람들이 떠나기만 한다는 대구에서 살고 있는 외지 출신 '대구사람'들에게 대구와 대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무뚝뚝하지만 구수한 맛도 있다는 말투와 대화의 방식에서부터 이들의 지적은 시작된다.

말투와 대화의 부재는 주로 대구로 시집 온 여자들이 대구사람들에게 느끼는 '벽'이다.

요리연구가 이혜정(48.서울생)씨는 대구사람들의 첫 인상을 무뚝뚝함이었다고 했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대구에 정착한 이씨는 "지금은 속 마음을 아니까 괜찮은데 처음에는 무례하다고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목소리가 크고 직설적이며 화끈하다는 특징을 흔히 대구 남자들은 자랑처럼 이야기하지만 "개성이 너무 뚜렷해 목소리 통일이 도무지 되지 않고 대화와 토론에도 전혀 익숙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며느리로 대구에서 10년째 산다는 박성옥(46.서울생.학원경영)씨의 이야기다.

남녀차별주의 내지 철저한 남성우월주의라는 변형된 형태로도 나타나는 가부장주의 역시 대구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할 만하다.

박씨는 "대구 남자들은 애정 표현에 서툴고 무심한 것을 사내다움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육아나 가사를 돕는데 가장 서툰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혜정씨 역시 "대구 사람들 특히 대구 남자들은 '여자가 무슨'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다"며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여자가 일하는 것에 대한 대구 사람들의 거부감처럼 보였고 조롱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대구와 대구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언제나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는 것이 '끼리끼리' 문화로도 일컬어지는 배타성이다.

이는 곧 다양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획일주의와도 연결이 된다.

도무지 외지인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대구 사람이 아니면 되는 일이 없다고들 한다.

그만큼 열린 사회가 아니라 외부와는 문을 꼭 닫고 사는 사회라는 것이다.

외부와의 교류도 적고 정착성이 강했던 농경사회, 씨족사회의 전통이 너무나 잘 보존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반평생을 넘게 대구에 살았지만 아직 대구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극작가 최현묵(48.서울생)씨의 이야기다.

최씨는 "27년 동안 대구에 살고 있는데 '대구사람도 아니면서 너무 나서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힘이 쭉 빠진다"며 "21세기 변화의 시대에도 대구 사람이 아니면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혜정씨도 "아무리 대구에 오래 살아도 대구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 같아 대구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며 "대구출신이 아니면 대구 사람축에 끼지 못하며 부모가 대구 출신이라도 대구에서 나야지 비로소 대구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래서는 외지인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으며 이런 현상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대구와 대구사람들의 옹졸함으로도 비친다는 것이다.

특히 대구사람들의 획일성에 대한 지적은 쏟아진다.

흔히들 대구사람들은 식당에 갔을 때 손님이나 식당주인이나 다양한 음식을 주문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다들 자장면을 시키는데 혼자서 짬뽕을 시키면 별종 취급을 받은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다.

집단과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면 '튄다', '나선다', '설친다'는 등의 비판이 들린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충고도 이어진다.

그러나 최현묵씨는 "설치는 사람이 많고 튀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그 사회가 활력이 넘칠 수 있다"며 "누가 좀 잘 나가면 '너무 나서지 마라'는 말을 듣게 되는 사회에서는 변화를 기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위천공단으로 온 대구가 시끄러울 때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였고 입도 벙긋하기 힘들었다"며 "도대체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천 출신으로 대구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홍덕률(48) 교수는 대구에 산 지 16년째다.

홍 교수 역시 연고주의와 견제와 균형도 없는 획일주의가 대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구 사람들이 토론에 익숙지 않은 것은 물론 대화마저 잘 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또한 "기존 질서에 대한 집착, 변화에 대한 저항, 현실에 대한 안주 등이 대구가 앓고 있는 수구병이며 그 때문에 대구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대구라는 도시에서는 변화의 기운을 찾아보기 힘든 대신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대구사람들의 특징은 여실히 나타난다.

바로 대화의 부재다.

흔히들 '속 정'이라는 두 글자로 대구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없음을 변호한다.

이 말은 곧 표현의 미숙함, 대화의 부재 그리고 무뚝뚝함의 다른 표현이다.

심지어 가족들 간에도 오가는 말이 많지 않다.

'밥도, 아는, 자자'로 통한다는 대구 사람들의 대화 방식에 대해 대구에 산 지 9년째라는 최후남(41.서울생.문화센터 강사)씨는 "대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가족 성원간의 대화의 단절과 추억의 공유를 가로막고 있다"며 "이제 '속 정이 깊다'는 말로 멈춘 대화의 고리를 풀어야 대구를 좀더 밝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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