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그땐 그랬었지

그땐 그랬다.

여름철이면 두 살 위의 오빠를 따라 해수욕장으로 나섰다.

해운대나 광안리를 종점으로 하는 버스를 타고 맨 뒷자리에 앉아 저 멀리 파란 바닷물이 보일까 손가락 접어가며 남은 정거장을 세어본다.

이야~바다다! 부산이 고향인 나에게, 바다는 엄마의 허락만 있으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신나는 놀이터였다.

발가락을 간질거리는 뜨거운 모랫길을 한참 걷다 가져간 검정 우산을 펼치면 거기가 바로 우리의 아지트였다.

남자아이들은 훌러덩 웃통을 벗고 준비운동도 없이 바닷물로 뛰어들었고 모래 범벅이 된 옷을 주섬주섬 챙겨야 하는 동생들은 한줌이나 입이 튀어나왔다.

그때는 그랬었다.

알록달록 커다란 파라솔과 간이 샤워시설은 그림의 떡이었다.

조심하고 동생들 잘 챙기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하고 간신히 받아낸 허락이라 왕복차비면 감지덕지였다.

군것질이라도 했다간 십여 정거장를 걸어 집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커다란 검은색 자동차 속바퀴면 여느 집의 예쁜 새 튜브가 부럽지 않았고 너도나도 거기에 매달려 허우적거리다 파도를 타며 해안으로 밀려오기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폐장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바다경찰서 앞 국기 게양대에서 하강식이 있을 때면 가슴에 손을 얹고 다음을 기약하기도 했다.

모두가 '깜상'이고 '연탄집 아이'였다.

벌겋게 익어버린 아이들은 무사히 놀이를 마쳤음에 안도하면서 피곤한 몸을 버스에 실었다.

내일 아침이면 온몸 가득 허연 껍질을 벗기며 히히거리겠지.

후텁지근한 밤공기에 잠못드는 밤, 지그시 눈을 감고 그 시절을 생각해 보니 새파래진 입술로 부르르 떨고 있는 조그만 녀석들이 모래에 꽂아둔 검정 우산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훤하게 떠오른다.

요즘 아이들도 그런 놀이터를 좋아할까? 올여름엔 내 아이들에게 신나는 파도타기를 가르쳐볼까 한다.

도성민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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