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영남)서울과 지방, 무시와 무관심

금년 7월초 나는 공교로운 제안을 동시에 받았다.

금년 말까지 일간신문에 고정칼럼을 맡아달라는 거였는데 그게 한군데는 잘나가는 서울의 신문이고 또 한 군데는 남쪽지방에서 잘나가는, 소위 지방지였다.

지방지로부터 정규칼럼 청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서울지와 지방지에 대한 나의 느낌은 꽤 많이 달랐다.

그러니까 서울지의 경우는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그냥 써야지'였는데 지방지는 선뜻 그런 느낌이 안들었다.

오히려 '아이쿠! 9월까지는 광주비엔날레 출품이 발등에 떨어졌는데 지방신문에까지 원고를 보낼 수가 있을까?' 뭐 이런 식이었다.

석연치가 않았다.

왜냐하면 나한테는 이미 지방신문을 얕잡아보는 감정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터놓고 얘기해서 좀 무시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지금 이런 지면을 통해서 지방지에 대한 평소의 느낌을 말하려는 것이고 또 이런 기회를 통해서 어느 정도 용서를 얻으려고 이런 구차한 얘기부터 꺼냈다.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내가 지방지를 무시했다는 걸 행여 나의 오만의 결과로 생각해주지 말기를 바란다.

그건 오만의 결과도 아니고 말 그대로의 진짜 무시를 하는 행위도 아니었다.

단지 나는 지방신문에는 별 관심 가질 일이 없었고, 찾아볼 일이 따로 없었을 뿐이다.

그것은 내가 평소 지방TV도 볼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방뉴스에도 별 신경을 안썼다는 의미다.

생각해보시라. 내가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온 지가 벌써 40년이 훌쩍 넘었는데 지방 매스컴에 신경 쓸 일이 뭐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나는 지금 서울예찬을 늘어놓으려는 건 천만에 아니다.

내 얘기의 핵심은 사람사는 데에는 반드시 모종의 격차가 있기 마련이고, 상위권은 하위권을 어느 정도는 무시하기 마련이고 하위권은 상위권의 그런 무시나 무관심에 대해서 시시콜콜히 따지는 쫀쫀한 인물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바로 얼마전 나는 손숙 전 장관과 김동건 아나운서와 함께 무려 다섯시간 가까이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실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는데 그때 마침 영호남의 지역감정에 대한 화제가 불거져 나왔었다.

김 전 대통령은 매우 스테레오타입의 어른이시라 평소에 숙지해두셨던 우리네 역사 속의 지역감정 문제를 저 삼국시대 이전서부터 훑어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마침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막 끝낸 뒤라 어르신의 말을 끊고(무례하게 말을 끊고 들어가지 않으면 누구도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없을 만큼 어르신은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내는 스타일이셨다) 내 의견을 내놓았다.

'선생님! 그런 지역감정문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게 아닙니다.

창세기때부터 있더라구요. 유대민족의 아버지격인 아브라함의 자손은 태고적부터 괄시를 받으며 쫓겨다니고 종래에는 독일인 히틀러로부터 수백만이 맥없는 죽음을 당하고 지금도 아랍인은 유대인을 증오하고 유대인은 아랍인을 무슨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비하면 우리네의 동서갈등 정도는 새발의 피인 셈이죠.'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르신께서 내 얘기를 귀담아 들으셨는지 그건 지금의 관심사가 아니다.

문제는 막말로 서울놈은 지방놈을 무시하고 지방놈은 시골놈을 무시하고 시골놈은 자기보다 더 못사는 가난뱅이를 무시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인기가수는 덜 인기가수를 무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나는 또 나보다 더 돈많고 인기많은 가수한테 형편없는 무시를 당하면서 살고 있다.

아! 내가 지금 가수 파바로티나 엘튼존, 에릭 클립톤, 화가 피카소 그리고 글쓰는 왕년의 시인 이상(李箱) 같은 이로부터 받고 있는 무시의 수준은 거의 모멸감 수준이다.

이런 (아사리)판에서도 우린 기죽지말고 꿋꿋이 살아가야 한다.

세상살이가 참 오묘찬란하면서도 재밌다는 걸 첫인사로 대신했다.

조영남(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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