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점심 굶는 학생들

지난날, 점심시간에 슬그머니 교실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도시락을 싸올 수 없어 남들이 식사하는 동안 운동장이나 교실 주위를 서성거리는가 하면, 물을 잔뜩 마셔 허기를 달래는 경우도 있었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굶으며 넘었다/……/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소년은 풀밭에 누웠다/하늘은 한 알의 보리알/지금 내 앞에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황금찬 시인은 지난날의 '보릿고개'를 이 같이 읊었다.

▲하지만 이 슬픈 교실 풍경이 1960, 70년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랜 '빈곤과의 전쟁' 속에서 빈민층 자녀들의 점심 굶기는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었지만, 지금은 그 사정마저 다르다.

부유층의 사치와 향락의 그늘에는 아직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청소년들이 있다.

더구나 지난날처럼 허리띠 졸라매고 꿈을 꾸기보다 위화감의 골만 깊어간다면 큰 문제다.

▲대구의 결식 학생은 지난달 말까지 402개 초.중.고교의 2만9천174명으로 집계돼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보다 15.6%, 2002년보다는 61%나 늘었다.

특히 2002년에 비해 중학생은 67%, 고등학생은 무려 배 가까이 증가했다.

경북의 경우도 980개 학교의 2만9천416명으로 밝혀져 지난해보다 9.3%, 2002년보다는 36%가 늘어났다.

▲이들은 학기 중에 급식비를 못내 굶거나 방학중 끼니를 못구해 점심을 거르는 학생들이다.

더구나 교육청이 지원하는 중식비로 점심을 해결했던 학생들마저 이번 여름방학부터 제공 부서가 지자체로 바뀌면서 선정 기준이 달라져 굶는 처지다.

대구시 구.군들은 그중 급식 혜택을 받아온 2천명에게만 제공하고, 경북도도 교육청이 선정한 인원의 10분의 1의 학생들에게 급식하고 있다.

▲어릴 때의 굶주림이 빚는 좌절감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일 수 있다.

가난을 이겨내고 분발해서 성공한 인사들이 많지만, 희망이 담보돼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즘 식당 한 구석에서 수치심을 참아가며 밥술을 뜨느니 차라리 굶겠다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면, 우리 사회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게 아닐까. 일단은 결식 학생이 없도록 해야겠지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는 길까지 함께 찾아야 하리라.

이태수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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