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詩와 함께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

세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

똑같은 해와 달 아래

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사는 것이라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의 강가에서 똑같이

시간의 돌멩이를 던지며 운다는 것이라네

바람에 나뒹굴다가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나뭇잎이나 쇠똥구리 같은 것으로

똑같이 흩어지는 것이라네

문정희 '사랑해야 하는 이유'

'똑같이'라는 말은 연민의 육체이다.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먹고 마시는 것이 똑같고, 한 하늘 밑에서 늙어 가는 것이 똑같고, 흐르는 세월 앞에 속수무책인 것이 똑같고, 죽은 뒤의 저쪽이 도대체 오리무중인 것이 똑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똑같기 때문에 사랑하는가, 사랑하기 때문에 똑같은가? 예컨대 요절한 김정호와 김광석을 똑같이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가,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56%의 알코올을 똑같이 좋아하는가? 순서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그것이 존재의 이유라는 것, 그 사실이 중요하다.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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