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선시대 남자들도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노회찬 지음/일빛 펴냄)

조선시대에도 레즈비언이 있었을까. 그들은 또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세종대왕은 이 물음에 대한 최고위 증언자다. 1436년 세종은 이렇게 전한다. "내가 듣건대 시녀와 종비들이 사사로이 서로 좋아해 동침하고 자리를 같이한다고 하므로, 이를 아주 미워해 궁중에 금지령을 엄하게 내렸다. 어기는 사람이 있으면 곤장 70대를 집행하고, 그래도 그만두지 못하면 100대를 더 집행하라." 더 우스운 것은 세종의 둘째 며느리도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열녀문과 은장도로 대변되며 높은 정절을 자랑하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개방적인 성문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종9년 '세종실록'에는 고위 관료 38명과의 간통 행진을 벌여온 유감동이라는 여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시누이의 남편과도 관계해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결국 유배지에 가서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지은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지금껏 우리가 배워왔던 국사 교과서에 딴죽을 걸며 상식을 뒤엎는 역사적 사실들을 들추어낸다. 길가에서 나인들과 언제라도 간음하기 위해 지금의 러브호텔 원조격인 이동식 방을 만든 연산군의 이야기나 조선시대 남성들 사이에 귀걸이와 피어싱이 유행했고, 거북선을 처음 만든 사람이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는 얘기는 재미를 넘어서 충격에 가깝다.

남편이 육아 휴가를 받는 것은 해외 토픽에나 나오는 선진국만의 얘기인가. 세계 최초의 남자 육아 휴가 제도를 실시한 것은 다름 아닌 조선시대 세종대왕이었다. 또 관청의 계집종이 아이를 낳아도 100일의 휴가를 주던 조선시대의 휴머니즘은 이제 겨우 90일 휴가를 얻게 된 우리에게 인권이 과연 얼마나 진일보하게 됐는지 의문부호를 달게 만든다.

우리나라 대통령궁인 청와대는 사실 세종대왕도 비싸서 함부로 쓰지 못한 청기와로 지붕을 씌웠다. 문종이 절을 지으면서 청기와를 사용하다가 신하들의 반대로 포기한 것도,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왕궁들의 기와가 모두 검은색인 이유도 단 한가지, 청기와가 검정기와보다 더 고급이고 비싸기 때문. 조선 초기의 이런 절제하는 풍습도 연산군과 광해군이 등극하면서 차츰 무너진다. 당시 '광해군일기'를 기록한 사관은 이들 두 왕을 한심하다는 듯 이렇게 논평한다. "왕의 사치스런 마음이 끝이 없어 청기와도 모자라 중국에 사신을 보내 황기와 굽는 법을 배워오게 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분수에 지나친 죄에 빠지는 줄을 모르고 하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니, 어찌 화를 면할 수 있겠는가."

저자가 조선왕조 500년사 속에서 건져낸 놀랍고도 진기한 99편의 삽화들을 읽고 있으면 마치 조선시대의 '블랙박스'를 여는 기분이다. 게다가 에피소드마다 오늘의 현실과 비교하며 저자가 곁들이는 촌철살인의 촌평은 통렬한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해준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찾아든다. 조선시대 역대 왕조의 기록을 집대성한 조선왕조실록처럼 대한민국실록을 만들면 어떨까. 만일 조선시대처럼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사초를 작성한다면, 비리니 국정조사니 하는 사회적인 혼란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은 오늘의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너희도 실록을 써라!" 정욱진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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