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초순 금강산을 다녀왔다.
국제 PEN클럽 한국본부가 주최한 2박 3일 동안의 금강산 여행이었다.
비교적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지만, 북한을 배도 아닌 육로로 간다는 설레임으로 며칠째 밤잠을 설쳤다.
몸은 피곤한 것 같은데 정신은 점점 더 맑아 온다.
북으로 향하는 마음은 착잡했다.
흐린 하늘처럼 잿빛으로 젖어 오는 가슴은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 아닌 북한. 아득하고 멀기만 하던 북녘을 직접 여행하게 되다니.... 어린 시절 6. 25 전쟁을 뼈아픈 고통 속에 보낸 세대로서 어찌 만감이 교차하지 않겠는가.
여러 가지 상념에 젖어 있는 동안 남쪽 출입관리사무소에 도착했다.
금강산을 관광하려는 관광객들로 초만원이다.
대학생, 할아버지, 할머니,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다 모인 것 같았다.
우리들은 안내원들의 긴 설명 끝에 금강산 관광증을 받았다.
일회용 여권인 셈이다.
네모난 비닐 속에 우리들의 신원이 적힌 종이도 잘 간수해야 했다.
그 종이가 찢어지거나 하면 벌금을 내야 한단다.
자유분방하게 살아 왔던 우리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휴대전화, 녹음기, 라디오, 망원경은 물론 고성능 카메라도 북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 외에는 무조건 압수했다가 집으로 갈 때 돌려준다던가.
펜클럽 본부에서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북측에서 혹시 누가 물으면, 똑같이 대답을 하고 가능하면 북쪽에 거슬리는 말들은 하지 말자고. 거듭 다짐하기도 했다.
지금부터 우리들의 자유는 다시 남으로 돌아올 때 까지 물건과 함께 잠시 보관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북으로 북으로 버스는 달린다.
북한 군인의 경직된 모습을 처음 만났다.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서 있는 납 인형 같았다.
표정하나 없이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은 바라보고 있던 내 쪽이 오히려 긴장된다.
좁은 간격을 두고 붉은 깃발을 들고 서 있는 북한의 군인들. 허리에 찬 권총이 분단의 아픔을 대신해 주는 듯하다.
검문이 있겠다며 버스에 올라온 북한군인들의 규격화된 절도 있는 걸음걸이. 획일화된 공산주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앞으로 여행 동안 금강산 이외의 곳에서 사진촬영은 일절 금지한다고 했다.
특히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바깥경치를 찍어서도 안된단다.
그냥 눈으로만 보고 돌아가란 말인가.
금강산, 그 빼어난 경치로 세계인이 감탄한다는 금강산.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기묘하고 아름다운 봉우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조장님의 설명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악미, 나무와 바위가 조화된 계곡미, 아늑하고 온화한 호수미 등 금강산에 대한 예찬은 끝이 없었다.
금강산 가는 길은 참으로 깨끗했다.
통제된 사회 속에서의 엄격한 질서의식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침이나 담배꽁초는 물론 휴지하나 버려져 있는 곳이 없다.
무조건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아예 버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 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은 우리들이 꼭 본 받아야할 일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약수도 손으로 받아먹으면 오염된다며 물통을 이용해야 했다.
벌금을 내던 그 이외 어떤 방법이던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환경은 부럽고 부러웠다.
급경사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상팔담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경치가 좋고 물이 맑아 하늘에서 팔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전설이 담긴 곳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물빛은 내 평생 처음 본다는 원로시인님의 말씀에 나도 공감하고 있었다.
금강산 관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예관람이다.
인간의 체험과 정서, 지향 등을 반영함으로써 사회 교양적 기능을 하는 인체예술의 한 장르로 평가받고 있었다.
따라서 대우도 우리나라 장관급대우라고 한다.
국제 교예축전에서 입상한 작품들답게 정말 잘했다.
기막힌 묘기였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동작이란 동작은 다보여 주었다.
중간중간 우리는 '하나'라는 글자가 나올 땐 가슴 찡한 울림이 전해졌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 여운은 길게 남아 금강산기행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허정자〈한국수필작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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