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이 가야금을 만든 경북 고령읍 쾌빈리 정정골을 지나 저전리 낫질못을 비껴 미숭산 자락에 자리한 '내예술촌'. 이 숲속 폐교 터에 아들 둘을 품에 안은 동갑내기 부부 미술가가 8년째 둥지를 틀고 있다.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윤명국(40)과 서양화가 황현숙이 그들이다.
2층 건물인 폐교의 1층은 윤씨의 작업실과 전시실, 2층은 황씨의 작업실과 응접실로 꾸며져 있다. 창문에서 바라본 바깥 전경은 바로 캔버스에 담은 풍경작품이었다. 윤씨는 "8년전 경산의 한 아파트 반지하에서 작업을 해오다 답답한 공간을 탈출했다"며 "자연 속에서 자연을 소재로 작품을 하고픈 욕구를 실현한 셈"이라고 말했다.
갇힌 공간에서 트인 공간으로, 메마른 아스팔트에서 숲과 흙내가 나는 곳으로 빠져나온 뒤 자신의 갇힌 작품도 굴레를 벗어났다. 자연을 소재로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 윤씨 조각 작품의 주 테마다.
그는 "작품활동의 결과인 조각뿐 아니라 작품활동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15년째 퍼포먼스를 함께 벌이고 있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자연처럼 그의 퍼포먼스도 '옷을 벗는 것'에서 출발한다. 옷을 벗음으로써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 페이스페인팅, 우산, 테이프, 시계추 등을 활용한 몸동작을 통해 소리와 바람과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8일 오후6시 내곡예술촌에서 벌이는 그의 퍼포먼스 주제도 '자연으로 돌아오라'이다. 이번 공연에는 일본과 고령, 부천 작가의 퍼포먼스와 시낭송, 음악공연이 함께 펼쳐진다.
황씨도 내곡예술촌에 자리를 잡은 뒤 삶과 작품활동의 방식이 모두 바뀌었다. 황씨는 "고요함 속에 들려오는 새소리와 숲속에 비치는 강렬한 햇살이 모두 작품의 좋은 소재가 된다"며 "숲속 풍경이 주는 강렬한 인상이 종종 영감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황씨의 작품 소재는 고요한 시골 밤에 울리는 풍경소리, 빈 절터에 솟은 탑, 연꽃, 숲속 풍경 등이다. 황씨가 초등생들을 가르치는 읍내학원의 이름도 '해와 달을 그리는 아이들'이다.
윤씨 부부의 취미생활은 작품활동과 다름 아니다. 대가야 왕릉이 있는 주산과 미숭산을 오르고 텃밭을 가꾸면서 영감을 얻고, 아이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예술을 즐기고 삶을 만끽한다. 텃밭에서 도라지 옥수수 고추 가지 상추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면서 얻는 땀방울은 또다른 작품활동이자, 즐거움이다.
부산과 강원도 원주의 도심에서 자란 윤씨 부부는 이제 '시골 예찬론자'가 됐다. 황씨는 "10리 밖에 시장이 있고, 문화공간이 부족해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자연이 주는 혜택은 더 크다"며 "처음엔 뱀, 두꺼비, 지네, 벌레 등 때문에 괴로웠지만, 이젠 이마저도 친숙해졌다"고 말했다.
윤씨는 "혹 임대한 폐교에서 떠나야 할 상황이 온다면 이 곳보다 더 깊숙한 산 속으로, 자연 속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부부 미술가의 삶과 생활은 바로 예술 그 자체였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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