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외계층 '여름지옥'..."이렇게 힘들수가"

"없는 사람은 여름 나기가 더 힘듭니다..."

6일 밤 11시 남구 대명3동 외국인 쉼터.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매케한 악취와 함께 한증막 같은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20여평 남짓한 2층 건물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모두 40여명. 4평~6평짜리 방 4곳에 흩어져 여름을 나는 이들의 유일한 냉방 기구는 선풍기 4대가 전부. 심지어 스리랑카 출신 20명이 모여있는 방에는 아예 선풍기조차 없는 실정이다.

한 외국인은 "작은 선풍기를 돌려도 더운 바람만이 나온다"며 "여기에 거주하는 외국인 대부분이 더운 나라에서 왔지만 올 여름나기가 너무 고통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외국인들은 더위를 참지 못해 쉼터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잠을 청했고, 모아둔 돈이 다 떨어져 겨울이불.담요를 덮고 자는 모습도 눈에 띄였다.

방글라데시 출신 모하메드(29)씨는 "대구에 온지 몇년이 됐지만 이렇게 힘든 여름은 처음이다"며 "고용허가제 전면 도입을 앞두고 마음까지 더워 잠못 이루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외국인상담소 김경태 목사는 "지난 겨울은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겨우 났지만 6월말부터 비축해 둔 쌀도 거의 다 떨어져 요즘은 서로 식량을 아껴먹자는 얘기까지 나와 안타깝다"고 전했다.

6일 밤 10시쯤 대구역 뒤편 쪽방 골목. 10년만에 찾아온 폭염은 저소득층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쪽방 80여개가 몰려 있는 이곳은 대부분이 낡은 슬레트 건물인 탓에 더위에 쉽게 열을 받는데다 롯데백화점 등 대형 건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바람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박모(34)씨는 "방안이 사우나탕과 같지만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어 뜬눈으로 지새우거나 술을 마신뒤 낮 시간에 냉방 시설이 가동되는 곳을 찾아 잠을 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1평 남짓한 박씨의 쪽방 살림살이는 낡은 겨울 담요와 라면을 끊여먹기 위한 가스버너가 전부.

쪽방에 온지 한달됐다는 김모씨(46)는 "일거리조차 없어 요즘은 하루버티기가 괴롭다"며 "여분의 옷도 한두벌밖에 없어 옷이 땀에 절어도 제대로 갈아 있을 수도 없고 샤워도 할 수 없어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지경"이라는 것.

제일종합사회복지관 조재경 재가복지팀장은 "상당수 저소득 가정이 선풍기.냉장고 등도 없이 무더운 여름을 보낸다"며 "겨울철에는 난방비라도 지원되지만 여름철에는 사실상 아무런 지원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지역 복지단체들은 홀몸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저소득층을 상대로 소형냉장고, 선풍기 등을 제공하고 피서캠프를 운영하는 등 여름나기 지원에 나서고 있다.

복지 관계자들은 "체력이 약한 노인이나 환자의 경우 폭염에 노출될 경우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며 "이들을 위해 낮 시간 동안이라도 냉방시설이 있는 공동시설에 머물게 하는 등 노약자 행동요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창희기자 cch@imaeil.com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사진:불볕더위가 계속된 6일 밤 대구시 남구 대명동 외국인쉼터에서 외국인체류자들이 하나뿐인 선풍기 주위에 모여 한증막더위를 쫓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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