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멀티플렉스 공화국이다.
지난 50여 년간 극장가를 주름잡던 단관과 재개봉관들이 최근 3, 4년 새 몸집 불리기에 나선 멀티플렉스에게 모든 자리를 내줬다.
자본의 논리에다 '다양한 영화에 대한 넓은 선택의 폭'을 내세운 멀티플렉스가 관객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짐에 따라 대부분 사멸되거나, 간판을 바꿔단 것.
하지만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멀티플렉스 점유율 100%가 과연 지역 영화팬들이 바라는 이상형일까.
◇세계 최초(?)의 멀티플렉스 시티
지난 2000년 7월 대구 도심에 6개의 스크린을 가진 극장이 등장했다.
한 극장에 여러 개의 영화간판이 걸린데다 인터넷 예매, 할인 서비스 등 다양한 부대혜택, 무엇보다 화려함과 최신식 시설로 인해 시민들의 눈은 별천지를 발견한 듯 신기해했다.
그러자 다른 극장들도 경쟁적으로 스크린 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한일극장이 7개관으로 늘리자 '네가 하면 나도 한다'는 식으로 아카데미극장이 뒤따랐고, 만경관은 아예 15개관을 넣어버렸다.
이에 질세라 메가박스(10관)와 롯데시네마(9관) 등 서울의 멀티플렉스 체인도 문어발식 스크린 확장에 동참했다.
이 같은 극장가의 치열한 시설투자붐은 단관들과 동네마다 있던 재개봉관들의 몰락을 가져왔다.
대구극장, 자유1·2극장, 송죽극장, 제일극장 등 대형 단관극장들이 멀티플렉스의 화려한 네온사인 뒤로 사라졌다.
또 사보이, 오스카, 신도 등 모든 재개봉관들도 간판을 내렸다.
여기에 최근 씨네아시아가 경영난을 이유로 폐관 절차를 밟고 있고, 유일한 단관으로 남게 됐던 시네마M마저 조만간 8개관 규모의 멀티플렉스로 바뀌는 등 대구가 세계 최초의 '멀티플렉스 100%' 도시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멀티플렉스에 영화가 없다?
멀티플렉스는 영화계 풍경에 안팎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줬다.
와이드릴리스(대규모 개봉) 배급방식에 따른 스크린 수의 증가는 1천만 관객시대를 열게 했고, 볼 만한 영화를 찾아 이 극장 저 극장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게 되는 등 관객들에게 다양한 편리를 제공한 것.
그렇다면 멀티플렉스에 대한 관객들의 실제 행복지수는 높은 것일까.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이 '멀티플렉스에 바라는 점'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2%가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을 꼽았다.
다양한 영화에 대한 폭넓은 선택을 최대의 매력으로 내세운 멀티플렉스를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결과물이 아닐까.
대학생 강형수(25)씨는 "소위 흥행할 만한 영화만 오래 걸려있고, 나머지 영화들은 일찍 퇴출당하기 때문에 조금만 꾸물대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이 요즘 영화관"이라고 했다.
특히 이러한 풍조는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들에게는 더욱 혹독하다.
교차상영(1개 스크린에 시간대별로 2개 영화를 상영)의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아예 간판도 걸지 못하는 수가 비일비재한 것. 실제로 '송환', '8인의 여인' 등은 평론가들의 별 세례를 받았지만 정작 극장주에게는 간택을 받지 못했다.
멀티플렉스의 흥행위주 전략 때문에 초기 매력포인트가 없는 '작은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선보일 기회조차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산프로덕션 강충구 대표는 "한국형 멀티플렉스의 가장 큰 문제는 영화에 대한 선택권을 배급사와 극장 측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영화산업의 버팀목은 다양성인 만큼 다양한 영화의 공존을 추구하고 있는 프랑스나 일본, 영국의 사례들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멀티플렉스 고향 미국은
멀티플렉스의 발원지인 미국에서는 최근 멀티플렉스들이 잇따라 파산하고, 대형 단관극장들이 다시 각광받고 있는 추세다.
홈시어터의 대중화와 P2P 서비스의 영향으로 75㎜ 이상에서 35㎜ 이하로 작아진 소형 스크린을 장착한 '비디오 방'이 더이상 관객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
영화제작사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는 "멀티플렉스의 장점은 다양한 영화들을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특정 영화들에 대한 '편식'으로 일관할 경우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멀티플렉스의 매력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경선 일정 완주한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가 지도자급' 존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