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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영화인 나운규 타계

1937년 8월 9일은 한국 영화의 선구자 춘사(春史) 나운규가 사망한 날. 태어난 지 겨우 서른다섯 되던 해였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한 나운규는 중국 간도에서 명동(明東)중학 재학 중 3.1 운동에 참가한 이후 홍범도 장군의 독립군에 가담하는 등 30여년의 생애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쳤다.

1924년 부산의 조선키네마에 입사해 '운영전(雲英傳)'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처음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주연으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나운규는 1926년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 주연한 '아리랑'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단숨에 천재로 부각됐다.

1936년 제작한 '아리랑 제3편'을 제작하면서 음성녹음에 성공해 한국 영화가 유성영화시대로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숨지기 전해인 1936년에 발표한 '오몽녀(五夢女)'까지 15편이 넘는 작품을 통해서 민족정신을 드높이고 독립에 대한 염원을 담아냈다.

이 공로가 인정되어 나운규는 1993년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영화로써 민족혼을 불태운 예술가에 대한 당연한 조치였다.

▲1877년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 사망 ▲1936년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1945년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1979년 'YH사건' 시작 ▲1992년 황영조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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