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금메달보다 소중한 것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은 미국 오노 선수의 반칙과 김동성 선수의 실격으로 국내 언론들이 더 떠들썩한 바람에 올림픽을 감상하는 감동이 반감되었지만, 호주 스티븐 브래드베리 선수의 1,000m 우승은 의미가 있었다.

500m 오심 파동으로 어수선해진 이후 벌어진 남자 1,000m 경기는 예선부터 경쟁이 치열했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5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었던 브래드베리는 애초부터 욕심없이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준준결승, 준결승을 거치는 동안 4등으로 달리다 선두들이 치열한 다툼을 하다 넘어지는 바람에 2등으로 결승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 실력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승에서의 작전은 최선을 다해 달리다 보면 경쟁이 치열한 선두가 2명 정도 넘어질 것이고 그러면 꿈에도 그리던 올림픽 동메달을 얻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앞서가던 4명이 모두 넘어지는 바람에 금메달을 얻게 되었다.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자기 실력은 금메달감이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경기를 끝내고 호주로 귀국하자 더 큰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주 정부가 그의 얼굴을 넣은 우표를 발행했던 것이다.

올림픽에서 많은 호주 선수들이 금메달을 땄지만 아무나 우표에 얼굴을 넣지는 않는다.

누가 봐도 실력은 뒤지지만 성실히 최선을 다하다 운좋게 우승한 사람을 치켜세우는 호주란 나라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도 사람인데 일생에 한번 찾아온 결승전에 욕심이 없었겠는가.

사실 꼴찌를 목표로 해서 운 좋으면 동메달이라도 기대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 것이다.

그런데 우승이었다.

모두들 아주 운이 좋은 선수라고 웃고 넘겼지만 우승은 필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우연은 필연성의 결과라고 믿는다.

실력있는 사람이 실수로 우승을 놓치는 것은 안타깝지만 실력 이외의 다른 요소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앞선 경기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다 순위가 바뀌는 것을 보고 몸싸움에서 다소 떨어져 가리라 생각한 브래드베리의 작전은 대세를 읽는 뛰어난 눈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경쟁사회에서 확실한 1등이 되어야만 살아남는다고 다그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아이들이 적당히 따라가는 것도 가르친다.

최선을 다해 따라가다 보면 일생에 한번은 금메달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호주에서도 브래드베리를 그렇게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을까. 이제 아테네 올림픽이다.

4년간 올림픽을 위해 땀흘린 세계의 젊은이들이 온갖 이야기를 쏟아낼 것이다.

유명 선수의 영광의 이야기도 좋고 우리 선수들의 선전은 재미를 더해 줄 것이다.

임재양 외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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