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정출기자의 포항제철소 환경파수꾼 체험

75m 상공서 굴뚝 지켜보다 '눈빠질 뻔'

"별로 힘들진 않을 겁니다.

가만히 앉아서 하늘하고 컴퓨터 단말기만 쳐다보고 있으면 됩니다.

"

현장체험을 하겠다고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찾은 때가 하필이면 35℃를 오르내리는 찜통 더위의 한복판에 섰던 지난 12일 포항제철소 환경감시탑에 올랐다.

이날 근무지는 전체 높이 105m의 탑신 3분의 2 지점에 있는 환경감시센터. "경치 구경이나 하면서 그냥 앉아 있다 가시라"며 이곳 책임자인 김우곤(50) 반장이 웃는 얼굴로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잘 보는' 일이 전부

업무지시는 역시 '잘 보고 있으라'는 것뿐이다.

75m 상공에 있는 사무실에는 여러 개의 CCTV 화면과 컴퓨터 모니터, 망원경 등이 있다.

같은 조 근무자는 김 반장 외에 베테랑 정해관(39)씨와 타부서에서 전입온 지 얼마안되는 김학문(48)씨, 그리고 이날 현장체험을 끝까지 도와준 환경에너지부 대기보전팀의 박재범(34) 대리 등 모두 5명. 포항의 '환경파수꾼'을 자처하는 이들의 업무는 제철소내 모든 오염물질 배출구를 지켜보면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오염사고를 감시하고 조치를 취하도록 관련 부서에 통보해 주는 일이다.

하지만 얕볼 일이 아니다.

마치 양반마을 어귀에 세워놓은 솟대처럼 촘촘하게 솟아있는 굴뚝도 '보고 있어야'하는 대상이고, 쉼없이 돌면서 270만평 제철소 전역을 비추는 환경감시카메라가 담아내는 TV화면도, 컴퓨터 단말기도, 망원경으로 봐야 하는 포스코 바깥의 포항공단과 포항시내 하늘도 모두 '보고 있어야' 되는 장면이다.

불과 30분 가량 지났는데 눈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신경도 예민해 지는 것 같다.

뭘 봤는지 옆자리의 정해관씨는 전화기를 들고 이 공장, 저 부서에다 대고 '조치하세요'라는 말만 하고 있다.

커피 한잔 생각이 나 슬그머니 일어나 뒷자리로 나가려는데 김 반장이 쏘아댄다.

"아니, 어디가세요? 앞 잘보고 있으라고 했잖아요."

◇아니땐 굴뚝에도 연기난다

아무리 굴뚝산업이라고 하지만, 밤낮없이 체철소를 들락거렸는 데도 이렇게 많은 굴뚝을 본 것은 이날 처음이다.

김학문씨는 "포항제철소에는 500개가 넘는 굴뚝이 있는데 대부분은 수증기를 내뿜는 것이고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것(연돌)은 67개입니다.

"

모든 굴뚝 꼭대기에는 자동측정장치가 부착돼 있다.

오염원이 일정치 이상 배출되면 경보가 울리고 컴퓨터 모니터에 표시돼 있는 굴뚝 색깔이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뀐다.

이 변색경보를 알아내기 위해 모니터에 눈을 붙이고 살아야한다.

시선을 함부로 돌릴 수는 없어도 말하는 것은 자유다.

재밌는 얘기 없느냐고 묻자 김학문씨가 대뜸 "아니땐 굴뚝에도 연기난다"고 했다.

"형산강 둔치에서 농사짓는 분들이 있는데 가끔 분뇨나 퇴비를 흩습니다.

이 때 악취가 나면 시민들이 마구 전화를 해요. 왜 ×냄새 풍기느냐고 거세게 항의하는 일도 잦습니다.

제철소에서 ×냄새는 절대 안납니다.

하하하."

동행했던 박재범 대리도 거든다.

"제철소나 포항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 저렇게 매연을 함부로 내뿜어도 되느냐고 하는 겁니다.

매연이 아니고 수증기를 보고 하는 말이죠." 제철소 상공에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흰색(흐린 날은 회색으로 보이기도 한다)으로 보이는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수증기다.

점심식사 뒤 배수종말처리장에서 만난 박창식(51) 주임은 포항제철소에서 하루에 수증기가 되어서 날아가는 공업용수가 2만t이 넘는단다.

◇2중, 3중, 4중의 감시

가만히 앉아서 앞만 바라보고 있자니 눈이 빠져버릴 것 같아 고참을 졸라 오후에는 밖으로 나갔다.

수질관리 및 대기환경 이동측정 차량을 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환경감시센터, 배수종말처리장 같은 환경관련 설비 담당자들의 업무 중 최근들어 비중이 부각되는 것이 하루에도 많게는 수백명에 이르는 손님접견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리감독 관청 관계자와 시민단체, 언론, 정계인사와 학생 및 포스코를 벤치마킹하려는 다른 기업체 관계자 등 모두가 소홀하게 맞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날도 오전 오후로 나누어 포항시민 상당수가 이곳을 다녀갔다.

포스코의 오염관리는 철저하다.

직원들이 눈으로, 망원경으로 감시하고, 컴퓨터 등 자동측정 장치로 체크하고, 시민들이 지켜보고, 하다못해 제철소 근처가 낚시가 잘 된다는 사실을 알고 온배수 배출구 주위에 몰려든 낚시꾼들까지 모두가 감시자인 것.

'환경감시'라고 쓰인 승합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배수종말처리장. 여기서도 역시 업무는 모니터를 '지켜 보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가면 좀 나으려나 했던 기대는 오판인 셈. 실제로 쇳물을 끓이고, 철판을 만드는 것을 포함해 제철소내 모든 설비는 무인 자동화다.

사람이 하는 일은 운전실에 앉아 작동하는 기계의 이상유무를 살피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깥 바람 쐬겠다며 올라탄 이동 대기측정 차량에서도 측정장치가 분석한 수치가 떠오르는 계기판을 뚫어져라 쳐다봐야 한다.

◇베테랑의 퇴근

"욕봤습니다.

오늘로써 박형은 우리 제철소 최고 베테랑 직원이 됐습니다.

"

'보기'만 했던 업무를 마치고 퇴근할 무렵, 고참 김반장은 이곳 근무자는 제철소내 모든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직원들로 편성된다는 말을 그제서야 해준다.

굴뚝 끝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나 연기의 색깔만 보고도 생산설비의 상태를 알아야 하고, 제철소 주변에 몰려드는 낚시꾼 숫자만 보고도 해수온을 가늠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환경감시 업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공해공장이라는 예전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친환경 사업장, 공원속의 제철소를 지향하는 철인들이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사진: 왼쪽 망원경을 보고있는 사람이 박정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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