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친일파, 아직 독립투사 행세"...마지막 광복군 홍재원옹

"얼마 남지않은 여생이지만 죽기전에 우리 현대사가 제대로 정립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생존한 마지막 광복군이며 대구의 최고령 독립지사인 홍재원(87.달서구 상인동) 옹.

광복 59돌을 맞은 그는 일본과의 독도 분쟁에 이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까지 최근 빚어지자 '편히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보청기를 끼고도 잘 들을 수 없고, 지팡이를 짚고서도 겨우 움직일 수 있는 홍씨. 그러나 그는 "할 수만 있다면 독립운동에 나섰던 젊은 시절의 열정을 갖고 흔들리는 조국의 역사를 바로잡는데 나서고 싶다"고 운을 뗐다.

홍씨는 잇따르는 역사 왜곡이 해방 이후 실패한 일제 청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우리조차 우리의 과거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애써 숨겨 왔는데 주변국이야 오죽하겠냐"며 "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독립운동 한 것도 아니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아직도 일제 앞잡이들이 독립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 때가 많다"고 말했다.

홍씨가 살아온 궤적을 따라가 보면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그가 독립군에 투신한 것은 춘천농업학교 1학년 때인 지난 1936년. 친구와 함께 만주로 가 이범석 장군이 지휘하는 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된 그는 해방 때까지 근 10년 동안 '사선'을 넘나들며 독립을 위해 싸웠다.

홍씨는 "어린 나이에 광복군에 가담, 많은 동지들의 귀여움을 받았고 힘든 삶에서 큰 힘이 되었다"며 "미군으로부터 정보 수집훈련을 받던 중 광복을 맞아 동료 44명과 함께 이범석 장군을 따라 귀국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고향인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북한 정권의 탄압이었다.

다시 남한으로 내려와 국군에 입대, 6.25를 치른 뒤 지난 61년 중령으로 예편한 홍씨는 "젊은 시절 일제 치하에서 영화를 누리던 이들이 지도층과 독립운동가로 행세하는 것을 보며 좌절감도 많이 느꼈다"며 "그러나 광복군 동료들은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홍씨가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것은 해방 후 반세기나 지난 90년 12월이었다.

그는 "각종 문서와 증거 사료들이 있지만 광복군으로 활동한 이들 중 일부는 사망 후에 유공자 인정을 받기도 했다"며 "이것이 우리의 현대사"라고 지적했다.

현재 전국에 생존해 있는 독립지사는 295명이며 대구에 13명, 경북에는 16명이 있다.

홍씨는 "죽기 전 주변국의 역사왜곡 문제뿐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

최창희 기자 cc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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