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와 함께-경찰,흉기 가해자-피해자 같은 병원에

구급차에도 함께 태우려

"흉기에 찔렸을 때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

지난 7일 오전 11시쯤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슈퍼마켓에서 술에 취한 40대 남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동생과 함께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던 윤모(21.남구 대명동)씨.

윤씨는 병원 응급실에서 있었던 끔찍했던 경험을 쉽게 지워버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자신과 누나를 흉기로 찔렀던 이모(43)씨가 같은 응급실에서, 그것도 자신의 병상과 8m 떨어진 병상에 누워 욕설을 내뱉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날 윤씨의 부모가 운영하는 수퍼마켓에 찾아가 담배와 술을 요구했다가 이를 거절하는데 격분, 집에서 흉기를 들고와 윤씨 남매에게 해를 입혔다.

"응급실이 어떤 곳입니까. 그 수많은 수술.치료 도구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뺏을 수 있는 곳이잖아요."

윤씨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아직도 공포에 질린 눈빛을 보였다.

2천cc의 피를 수혈해야 할 정도로 크게 다친 누나와 함께 응급치료를 받는 것도 힘든데, 가해자의 욕설과 협박까지 난무하는 응급실은 '공포' 그 자체였다고 했다.

"그 사람은 흉기를 너무 꽉 쥐어 손가락 두 개가 조금 긁혔을 뿐인데 흉기에 찔린 우리와 같은 종합병원에 데려올 필요는 없었잖아요." 누나 윤모(26.여)씨도 무서웠던 그 순간을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또 윤씨 가족은 이같은 상황에 대해 경찰의 초동 조치가 미흡했던 때문이라고 했다.

동생 윤씨는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가해자도 다쳤다며 우리를 칼로 찌른 사람을 119 구조차량에 같이 태우려는 것을 내가 막았다"며 "만약 가해자와 같이 119 구조차량에 탔다면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에 또 어떤 일을 당했을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경찰은 가해자 이씨를 다른 차량에 태워 같은 병원 응급센터로 데려와 가족들을 더욱 두렵게 했다.

응급실 담당의사는 "술에 취한 가해자가 피해자 가족들을 위협하며 의사인 나에게까지 욕을 할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며 "가해자는 피해자와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상식인데 경찰의 조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장 출동했던 경찰 지구대 관계자는 "선혈이 낭자한 급박한 상황이어서 실수한 것 같다"고 했다.

문현구 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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