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군 합천읍 영창리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내 위령각 앞뜰에는 지난 5월5일 현해탄을 건너온 문주란 세 포기가 심어져 있다.
문주란은 지난 1945년 8월6일과 9일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7천℃의 고열에도 살아남은 식물이다.
이 때문에 문주란은 '원폭 피해자의 화신(化身)'으로 불린다.
이 복지회관의 문주란은 한국 피폭자돕기에 앞장서온 일본 '태양회' 이사장 다카하시 고쥰(高橋公純.63)씨와 반전.평화운동단체 '도쿄 생활공동조합' 회원들이 속죄의 표시로 가져와 심은 것. 그러나 원폭 투하에도 살아남았던 문주란 세 포기 중 한 포기는 벌써 시들어 죽었다.
히로시마에서 피폭돼 평생을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구선이(78.합천군 율곡면) 할머니는 "빌어 먹을 이 놈의 풀만 살리면 뭐 하느냐"면서도 플라스틱 바가지로 연신 물을 퍼다 난초에 뿌린다.
피폭자는 물론 2세들에 대한 실질적 보상 등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데 따른 푸념이다.
원폭희생자 합천군지회장 심진태(59)씨도 불만이 많다.
지난달 21일부터 3일간 일본 나가사키현의 의료진과 공직자 등 11명이 '피폭자 건강상담' 명목으로 복지회관을 찾았으나 피폭 2세들의 검진은 외면한 채 생색만 내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심 지회장은 "일본 측은 8월만 다가오면 '전시성 상담'을 되풀이한다"며 "피폭자들을 괴롭히는 쇼(?)는 그만 하라"고 분개했다.
한국의 원폭피해자는 2만여명으로 추정되며 현재 등록된 사람은 2천206명이다.
이 중 합천 사람이 552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이유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1989년 국비 2억7천만원과 일본 측의 지원금 4억엔(당시 환율로 24억여원)으로 합천에 치료시설이 아닌 복지회관을 지었다.
정부는 회관을 짓고 남은 돈으로 피폭자를 위한 진료 보조비 형식으로 1인당 월 10만원씩 지급해 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난해 바닥나 현재 정부예산으로 복지회관 운영비와 진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치료기관이 아닌 쉼터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복지회관에는 만 65세 이상 원폭 피해자 75명이 생활하고 있다.
전국에서 20여명이 입주를 신청했지만 정원 초과로 대기 중인 상태다.
심 지회장은 "일본이 책임져야 할 것을, 우리 정부가 대신 나서고 있다"며 "피폭 1세에게만 쥐꼬리 혜택을 주고 있으나 피폭 2세에게도 진료.치료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난해 세상을 떠난 피폭 1세가 합천에서만 21명이며, 현재 이들의 평균 연령이 77세인 만큼 조만간 1세들은 살아남아 있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사진: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 위령각 앞뜰에 심긴 문주란에 구선이 할머니가 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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