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악기이야기-(16)­악기와 에로티시즘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격정적이지만 단순한 리듬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엑스터시를 일으키는 원초성이 거기에 있다.

타악기의 리듬은 때로 성적 충동을 일으킨다.

초당 20번에서 2만번 사이를 오가는 공기 진동에 불과한 소리가 인간 감정에 폭발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놀랍다.

악기와 음악에 에로티시즘적인 요소가 따라다니지 않을 수 없다.

트럼펫이나 플루트는 남성적인, 현악기나 실로폰은 여성적인 악기로 구별된다.

바이올린과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 현악기 몸체의 흘러내리는 곡선미는 여체를 닮았다.

격렬한 소리를 토해내는 록그룹 기타리스트의 전자 기타는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며, 실제로 적지 않은 기타리스트들의 연주 자세가 이 같은 시비에 휘말렸다.

연주가들에게 애기(愛器)는 연인과도 같다.

거장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내 첼로는 나무로 된 나의 부인"이라고 말했다.

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첼로는 젊은 아가씨이다.

이 아가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젊어져 아름답고 우아한 소리를 낸다"고 예찬했다.

연주자들에게 있어 좋은 악기와의 조우는 배필을 만나는 것과 비슷한 감이 있다.

약간의 필연과 인연, 숙명같은 것을 느낀다.

사진작가 맨 레이의 '앵그르의 바이올린'이라는 작품을 보자. 그는 키키라는 자신의 애인을 모델로 해 사진을 찍은 뒤 그녀의 허리에 바이올린 마크를 그려넣었다.

앵그르가 그린 누드화의 허리선은 관능미를 느끼게 한다.

그의 누드화에 나오는 모델의 허리선이 바이올린을 닮은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 생활을 4년간 했다.

몸을 악기에 비유한 예술 행위는 백남준에 이르러 정점을 이룬다.

그의 작품 '섹스트로닉'에서 여성 연주자는 첼로를 연주하다가 옷을 벗는다.

어떤 때는 백남준의 몸이 첼로가 되고, 여성 연주자는 그의 몸에 활을 긋는다.

이 여성은 옷 벗는 퍼포먼스를 벌이다 체포돼 미국 고등법원으로부터 음란죄 판결을 받았다.

물론 미국 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예술계의 거센 저항과 논란을 불렀다.

에로틱한 일화는 아니지만, 음악가들의 악기 애착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넘을 때가 있어 소개한다.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치머만은 '피아노를 가지고 다니는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다.

섬세한 타건이 장기인 탓에 그는 낯선 피아노에 적응을 잘 못한다.

악기마다 건반의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치머만은 독일 함부르크 본사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만을 세밀히 골라서 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연주회 때 그는 피아노를 공수해 다닌다.

이런 특이한 성격 때문에 9·11 테러 이후 그는 애기(愛器)가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폭파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공항 보안 관계자들이 엄청나게 크고 수상쩍은 이 '화물'을 폭발물로 오해해 폭파 처리해 버린 것이다.

김해용기자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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