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정부가 농촌의 유휴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권장한 사업인 농공단지와 지방산업단지가 무너져가고 있다.
휴.폐업 업체가 속출하면서 명맥만 유지할 뿐 제역할을 하지못하는 공단도 늘어나고 있다.
지방공단 붕괴 실태를 살펴보고 원인과 대책은 뭔지 알아보기위해 현장을 찾았다.
*공동이용시설에 잡초만
1994년 국비와 지방비를 포함해 58억여원을 들여 조성한 경주 서면농공단지. 공동이용시설엔 잡초만 무성하게 우거져 있고 공단주변에는 누가 버렸는지 알수도 없는 폐기물들이 쌓여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이 단지는 조성 10년만인 올해 겨우 분양이 마무리 됐다.
그러나 입주업체 13개중 이미 3개 업체가 경영난으로 휴.폐업했고 나머지도 경영난을 겪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몇 업체는 융자금은 물론이고 분양대금마저 연체돼있는 상태. 분양대금 평균부채도 1억7천여만원에 달해 분양대금 탕감 등 특단의 지원책이 없는 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면공단은 이런 와중에 공단협의회마저 유명무실해져 공동이용시설이 방치되고 있다.
주변에는 출처를 알수 없는 각종 폐기물이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행정 당국은 공단자체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며 방치해 두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찾은 포항 유일의 농공단지인 북구 청하면 '청하농공단지'(90년 준공)는 한마디로 '썰렁함' 그 자체였다.
상당수 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입주한 25개 업체 중 휴업이나 일시 가동 중단인 7, 8개사를 제외하면 18개업체만이 가동중이다.
백승학(38) 공단관리사무소장은 "가동 업체중 한달에 20만~30만원하는 관리비조차 제때 못내는 곳이 60% 정도"라며 "나머지 업체들도 몇달씩 밀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실상을 밝혔다.
영주시 봉현면 봉현농공단지에 입주한 25개 섬유, 인견직 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길완현 직물조합 사무국장은 "최근 경기악화로 25개 업체 중 2개업체가 휴업, 1개업체는 폐업한 상태"라며 "날이 갈수록 가동률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99년 10월 준공된 경산시 자인면에 위치한 자인산업단지는 그동안 일부 부실업체들이 입주해 있다가 휴.폐업과 경매-재가동-폐업 등의 과정을 거쳐 이제 건실업체들로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다.
현재 입주한 107개 업체들 중 79개 업체가 가동 중이다.
휴업이 13개 업체, 경매 등을 통해 구입한 후 설비 구축 등 건설중인 업체가 14개 업체, 착공되지 않은 업체는 1개 업체다.
섬유 경기를 반영하듯 섬유.의복관련 업체 중 휴.폐업한 곳이 9개 업체에 달한다.
이들 업체 중 일부는 현재 경매가 진행 중으로 새 주인을 찾고 있다.
이 산업단지내 한 섬유업체 간부는 "섬유 경기침체로 가동률이 평소 절반 정도로 떨어졌다"며 "연사기 등 기계의 절반 정도를 팔아버리는 등 규모를 축소해 나가고 있으나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5개업체중 4개 폐업
최근의 지방공단이 붕괴되고 있는 원인은 농촌의 인력구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농공단지는 당초 농촌유휴인력 활용을 위해 시작한 사업. 그러나 당초 목표인 농촌 젊은층은 도시로 떠나고 없고 그 자리를 도시인력으로 메우다보니 인건비만 올랐다.
거기에다 최근 불경기가 덮치면서 점차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경주 내남농공단지에서 만난 대성화학 대표이사 박정화(58)씨는 "3년전 기존 업체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경매가 진행중인 것을 입찰로 공장을 인수했다"며 "농촌에 유휴인력이 없어 농공단지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남 농공단지는 조성당시 5개업체가 입주했으나 그동안 3개업체가 사업실패로 떠나 주인이 바뀌었고, 현재 1개업체가 부도로 폐업했다.
안강농공단지 동진이공 대표이사 김은호(59)씨도 "농공단지의 근본 취지는 농촌지방의 농한기 유휴 인력을 활용한 가내공업수준이었지만 젊은층 인력이 없어 흔들리기 시작했다"며 "원자재값은 오르고 인건비가 상승, 나중에 입주한 업체 역시 모두 벼랑끝에 서 있다"고 했다.
포항 청하농공단지에 고용된 근로자는 모두 300여명. 하지만 청하.송라 등 공단 인근 지역민들은 이중 20여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음식료 및 쓰레기 봉투제조 업체 등에 고용된 주부들이 대부분이다.
가동중인 업체들은 대부분이 철구조물이나 석유화학 등 비금속 관련 업체들이기 때문이다.
인근 주민 김석출(50)씨는 "농촌일손도 부족한 판에 공장에 취직할 남자들이 어디 있느냐"며 "정부시책으로 농공단지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부분의 농공단지 업체들이 영세하다보니 조그만 경영충격에도 곧바로 부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청하농공단지 입주업체인 태광화학(주)의 김기돈 사장(전 입주업체협의회장)은 "심지어 IMF직후에는 청하농공단지에 들어가면 모두 망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을 정도"라며 "대부분이 2천만~3천만원 정도의 부도를 당해도 공장문을 닫아야 할 만큼 영세하다"고 말했다.
*업체도 마이드 바궈야
청하농공단지는 요즘 밤만 되면 마치 유령도시를 방불케 한다.
몇년째 예산부족으로 가로등이 고장난 채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단 측은 포항시가 고쳐주기를, 시는 자체해결을 원하고 있다.
백승학 공단관리사무소장은 "수년간 시에 고쳐달라고 애걸한 끝에 올해 시 예산이 확보됐다"며 "다음달 중으로 전기가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열악한 기반시설, 사업 아이템부족, 기술 및 재정지원 부족 등 기업외적 요인도 농공단지 입주업체들이 경영난을 겪는 이유 중 하나다.
김기돈 사장은 "정부정책으로 조성한 농공단지이고 이곳 입주업체 대부분이 영세업체들인 만큼 폐수처리시설, 상.하수도, 전기 등 기본시설 관리는 어느 정도 자치단체나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단 분양실적이 없자 타 용도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김천시 구성면 송죽.금평.광명리 일대 24만5천여평에 조성된 김천 구성지방산업단지는 한국토지공사가 1992년 공단부지 분양공고를 처음 했지만 입지여건 불리, 경기침체 등으로 분양 실적이 거의 없어 지난해 3월 공장용지 분양철회 공고를 했다.
장기간 애물단지로 방치되자 김천시와 한국토지공사는 지난 5월 구성공단을 다른 용도로 개발하기위한 협약체결 조인식을 갖고 공동 노력에 나섰다.
구성공단 소유권자인 토지공사는 부지를 제공하고 시는 각종 행정업무를 지원해 최근 이슈가 되고있는 공공기관 유치를 비롯해 골프장, 연수원 등 다양한 시설 유치를 위해 공동 대응을 펴고 있다.
포항시 김순태 경제통상과장은 "농공단지가 제 역할을 하기위해서는 산.학.연 접목을 통한 기술지원과 함께 입주 업체 스스로도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현.임성남.이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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