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돈의 흐름

해마다 이맘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들이 쏟아 놓고 가는 비바람 때문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다.

얼마전에도 15호 태풍 '메기'로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었다.

태평양 먼 바다에는 또 몇 개의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물 방울 하나하나는 몹시 부드럽고 약하지만 이들이 모여 큰 물이 되어 흘러가면 언덕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형태도 일정함이 없고 그 흐름도 땅의 형세에 따라 이루어지면서 오직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이러한 물의 성질과 그 움직이는 법이 변함없는 이치를 지니고 있어 노자는 '지극한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가르쳤고, 손자는 대저 '군사를 부려 싸움을 할 때는 물을 본받아야 함(兵形象水)'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또한 둑을 쌓아 물을 가두어 가뭄에 대비하거나 물길을 다듬고 관리하는 치수(治水) 활동은 예부터 나라 살림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여 왔다.

오늘날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돈도 물에 비유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돈도 항상 위험을 감안해서 이익이 높은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 흐름은 일정한 형태가 없고 시장의 제도적 '형세'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흐름이 결정된다.

일시적으로 큰 물이 몰려갈 때 물난리가 나는 것처럼 돈도 그 흐름을 통제하는 제도적 환경이 바뀌어 한 곳으로 뭉쳐 몰려가게 되면 금융시스템을 뒤흔드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가까이만 되돌아 보아도 1999년의 대우채권을 둘러싼 투자신탁회사 사태, 무분별한 현금서비스 확대로 2002년부터 불거진 신용카드사 사태, 대기업 여신은 줄이면서 주택을 담보로 한 가계 대출을 크게 증가시켰다가 이들의 만기상환 일시가 집중되면서 발생한 2003년부터의 가계대출 상환부담 문제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소기업에 대한 여신이 경쟁적으로 확대되면서 늘어난 중소기업 대출의 부실화가 우려되고 있는 모양이다.

물의 흐름을 다스리는 치수가 나라 살림에 중요한 것처럼, 돈이 자연스럽게 '돈되는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금융제도와 금융시장 기능을 바로 잡는 정부나 금융회사들의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돈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2차에 걸친 금융구조조정을 통한 금융 시스템의 정비가 있었고, 지금도 이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소유 및 지배구조나 경쟁력 측면에서 많은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돈은 은행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지만, 최근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은행은 돈을 풀지 않고 있다는 비난이 커지고 있는 모양이다.

감독이나 제도적 측면에서 금융회사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경기순환에 순응적이거나 경기순환을 확대하는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자기자본비율이나 대손충당금을 비롯한 감독제도, 조세 및 회계 제도 등이 돈의 흐름을 결정하는 지형지물이고 돈은 이 길을 따라 흘러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이 자연스럽게 '돈되는'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금융회사들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이에 더하여 돈이 위험 대비 이익이 높은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감독 및 제도 측면에서 '돈길'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최근 조세 및 회계제도, 감독제도 등의 검토를 통해 금융활동의 경기 순응성이나 경기순환 확대 성격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연구가 선진국과 국제기구들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도 이 문제에 적극 대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정해왕.전 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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