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자살의 전염현상을 일컫는 말로 '베르테르 효과'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
18세기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되면서 소설의 주인공처럼 노란 조끼를 입고 권총 자살을 하는 젊은이들이 유행처럼 생긴 데서 유래한다.
자살의 전염성은 '인간에게는 죽음의 본능이 있다'는 정신의학자 프로이트의 주장에서 시작된다.
평소에는 죽음의 본능이 억제되어 있다가 주변의 자살이 자신의 것과 동일시되면서 억제된 본능이 강렬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전염병의 유행처럼 충격적인 자살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비관한 동반자살(?)부터 재벌이나 고위공직자들의 줄을 이은 자살까지 안타까운 죽음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자살의 증가는 지난해 OECD 보건 통계자료에서도 확인이 된다.
OECD 국가 중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수는 헝가리(24.3명), 핀란드(20.4명), 일본(20명), 한국(18.1명)의 순이었고, 연평균 자살 증가율에선 우리나라가 1%로 최고 높았다.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나라들도 이제 점차 자살률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비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자살률 증가의 이면에는 경제적 위기 같은 어려운 외부적 요인이 있지만, 우리는 과거에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자살률이 더 높은 증거도 없어 단지 경제적 어려움만으로 최근의 자살 증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자살률 증가의 원인은 상대적인 박탈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 최근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인명경시 풍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에 더하여 언론의 대대적인 자살보도가 자살행동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자살의 원인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킨 설명, 반복적이고 지속적이고 과장된 보도, 선정적 보도, 자살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 자살을 다른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여주는 보도, 자살이나 자살자를 아름답게 그리는 보도, 자살성공자의 긍정적인 성격에 초점을 맞추는 보도 등이 자살전파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살을 희생양 차원으로 추모하는 보도를 하면, 자살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살에 정당성을 갖게 되고, '카드 빚으로 비관 자살'이라고 보도하면, 카드 빚이 있는 상당수가 자살을 한번 떠올리게 만든다.
특별한 공공성이 인정되지 않는 자살사건은 기사화하지 않는 외국 언론과는 달리 국내 언론은 자살이 극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개인 일가족의 자살사건과 같은 사적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고 심지어는 사건상황을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상세히 재현하므로써 모방자살을 낳는 원인을 제공할 수 도 있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총체적으로 접근하고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언론도 자살보도가 미칠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일반인들의 개인적인 자살사건을 신중하게 보도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채정수 열린마음 열린병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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