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한 권의 책이라도 완전히

그럭저럭 구입한 책들로 내 연구실은 빈 공간 하나 남지 않았다.

책들이 이리저리 섞여 여기저기 꽂혀 있다보니 어떻게 하면 손쉽게 필요한 책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늘 고민이다.

그래서 나만의 방법을 고안하여, 이제는 불편을 크게 느끼지 않고 지낸다.

출판사나 주제별로 모아두는 것이 그 중 한 방법이다.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과 관련된 책들이 서가의 한 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1970년대 유신시대 한복판에서 문학 공부에 입문한 우리 세대들은 사회주의 내지 현실주의 문예이론과 접할 기회를 거의 가지지 못했다.

가령 일제 강점기에 '카프'라는 단체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내역이나 성격을 파악하고, 관련된 작품들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기에 들어와 현실주의 문예이론과 관련된 책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문학을 사회학적으로 파악하는 관점이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나도 시대 흐름에 편승하여 관련 책을 모으고 읽었다.

하지만 익숙하지 못한 이론들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해의 정도도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졸속으로 번역된 책들의 단편적인 지식에 현혹되어 공허한 사유 속을 헤매고 다니기가 일쑤였다.

유일성에 매달려 다양성을 인정하는 탄력적인 사고를 보이지도 못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학적인 상상력은 서서히 위축되고 그 자리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담론이 활개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새로운 이론을 발빠르게 수입하여 그것으로 문학판의 권력을 장악하려는 욕망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순발력이 없어 늘 뒤따라가기만 하는 필자의 서가에도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탈구조주의, 근대성 비판 등과 관련된 책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대가 변하면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 변화의 속도는 빠르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와 해석 방법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학문의 유행을 따르려고 애쓰기보다는 자신만의 고유한 논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많은 책을 두루 섭렵하는 것보다 중요한 한 권의 책을 완전히 독파하는 것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서는 꼭 많은 책이나 정보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리라. 신재기(경일대 미디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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