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립투사 '좌익차별' 30년 한"

석우 채충식 선생 손녀 칠곡 영희씨 하소연

"정부는 해방 이후 행적은 문제삼지 않겠다는 발표를 여러 차례 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의 공적자료를 모아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으나 매번 허사였어요. 이번엔 대통령이 약속했으니 믿어야지요."

독립운동가의 손녀 채영희(60.여.칠곡군 왜관읍)씨의 인생은 한(恨)으로 요약된다. 채씨의 할아버지는 민족운동가로 손꼽히는 석우(石右) 채충식(蔡忠植)선생. 석우는 근.현대기 대구.경북지역 인물을 정리한 책 '근대 대구.경북 49인 - 그들에게 민족은 무엇인가'(1999년)에 장지연 선생, 의병대장 신돌석 장군, 국채보상운동 제창자 서상돈 선생, 이육사.이상화 시인 등 저명 민족운동가들과 함께 당당히 포함돼 있다.

그러나 석우는 국가유공자 공훈록에는 등재돼 있으나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좌익활동 경력 때문이다. 1892년 달성에서 출생한 채충식 선생은 대구농림학교에서 수학했고 왜관청년회에 입회하면서 일제하에서 청년운동을 시작했다. 1925년 전국적으로 엄청난 홍수피해가 발생하자 칠곡군 12개 사회단체로 '기근구제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 후 여운형 등과 함께 농촌개발과 문맹퇴치를 위해 '조선농인사(朝鮮農人社)' 결성에 참여했고, 같은 해 신간회가 결성되자 칠곡지회 의장을 맡았다.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 해방과 건국을 준비하던 '건국동맹'의 경북조직을 결성해 활동하다 검거돼 감옥에서 광복을 맞았다. 해방 직후 경북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는 등 민족주의 좌파적 입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으나 6.25 전쟁 이후부터 몸이 쇠약해져 사회활동이 뜸해졌다. 그러나 만년에 정치적 동지였던 김관제 선생의 유적비 건립과 독립운동가 장진홍 선생의 기념사업회를 만드는 등 마지막 활동을 하다가 지난 1980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대부분이 가난과 천대, 멸시의 삶을 살았듯이 석우의 손녀 채영희씨의 인생도 질곡의 연속이었다. 아버지 채병기씨는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좌파에 가담, 정치활동을 하다 1946년 대구 10.1사건에 참여한 뒤 행방불명됐다. 어머니는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홀몸이 돼 '빨갱이 집안'이란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삯바느질로 시아버지 석우를 봉양하고 영희씨 남매를 키웠다.

집안 살림을 책임진 영희씨는 일찌감치 결혼을 포기했다. 결혼도 사치인 삶이었기 때문이다. 왜관에서 질녀와 함께 오리전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영희씨는 할아버지와 집안의 명예 회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처음엔 영남대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일본 '고등경찰요사'에 할아버지가 요시찰 인물로 올라 있어 당연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후 심사때마다 탈락했습니다."

영희씨는 과거사 규명과 함께 좌파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 재조명작업도 본격화할 것이란 정부의 방침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이를 위해 영희씨는 다시 할아버지의 빛바랜 사진과 10년전 부산 정부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할아버지 이름이 기록된 독립유공자 공훈록 등 자료들을 챙기고 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좌익계열이란 이유로 서훈이 보류된 독립운동가는 모두 113명에 이른다.

칠곡.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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