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년에도 식지 않는 김춘수 시인의 창작열

지난 4일 기도폐색으로 분당 서울대병원에 입원, 지금껏 의식불명 상태에 있는 김춘수(82) 시인이 쓰러지기 전 문예지에 기고한 신작시 등이 발표돼 노시인의 왕성한 창작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계간 '문학수첩' 가을호가 김 시인의 시 'S를 위하여'와 '발자국' 두 편을 게재한 데 이어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도 김 시인의 신작 '장 피에르 시몽'과 '손을 잡는다고' 등 두 편을 실었다.

'문학수첩'에 실린 'S를 위하여'는 1999년 사별한 아내를 그리며 쓴 시로 'S'는 아내 이름의 이니셜. "너는 죽지 않는다.

/너는 살아 있다.

/죽어서도 너는/시인의 아내,/너는 죽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너는/그의 시 속에 있다.

/너의 죽음에 얹혀서/그도 죽지 않는다.

/시는 시인이 아니지만/죽은 너는/시가 되어 돌아온다.

/네 죽음에 얹혀서 간혹/시인도 시가 되었으면 하지만,/잊지 말라,/언제까지나 너는 한 시인의/시 속에 있다.

/지워지지 않는 그/메아리처럼,"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시 속에서 불멸성을 갖고 살아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문학수첩'은 김 시인이 두 편의 시를 지난 6월 팩스로 보내왔다고 밝혔다.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실린 '장 피에르 시몽'과 '손을 잡는다고'는 김 시인이 지난 7월 22일 탈고한 신작시. 시인은 쓰러지기 하루 전인 이달 3일 '세계의 문학'에 전화를 걸어 우편 도착 여부를 확인했다고 편집진은 전했다.

'세계의 문학' 박상순 주간은 "전화로 안부를 묻자 체력이 약한데 날이 너무 더워 견디기가 힘이 든다.

그렇지만 괜찮으니 자주 연락하고 들르라는 말을 남겼다"면서 "이 두 작품이 마지막이 아니길 빈다"고 밝혔다.

'노숙자의 종이 백에는/칫솔과 치약/소주가 한 병,/이 잘 닦고/소주 한잔 하고 신문지 깔고/잠이 든다.

/잠이 들면 거기가 내 집,/이 잘 닦고/애몽더라드 한잔 하고 옛날/장 피에르 시몽도 거기서 잠든 곳,"이라고 쓴 '장 피에르 시몽'은 삶과 죽음에 초연한 노시인의 마음을 담고 있다.

'누가 보았다 하는가/길을 가면 또 길이 있다고,/머리의 뒤쪽/뒤통수/그쪽에도 길이 있다고,/뒷걸음으로 가면/구름은 내 발밑에 깔리고/아득히 깔리고/내 눈시울은 눈물에 젖고/나는 어느새/보이지 않는 사람의 손을 잡는다고/그 작은 손을,"이라고 쓴 '손을 잡는다고'에도 삶과 죽음의 문제가 주제를 이루고 있다.

김 시인이 최근 발표한 작품들의 마지막을 종결부호(.)가 아닌 쉼표(,)로 처리하고 있는 것도 노년에도 식지 않은 창작열의 상징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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