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파이팅-국보법 개정·폐지논란

"표현자유"-"분단현실" 논쟁치열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전면 폐지를 권고한 데 반해 헌법재판소가 국보법 7조 찬양·고무죄 및 이적표현물 소지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국보법 개정·폐지 논란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이번 결정은 남북 분단 상황에서 국보법이 필요하다는 헌재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정치권의 개정·폐지 논의가 인권위 권고로 탄력을 받은 직후 나온 것이라 입법과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헌재 결정과 인권위 권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26일 "그간 국보법 개정을 통해 법규 개념의 다의성과 적용범위의 광범성이 제거됐으므로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는 주장은 이유없다"며 "향후 입법부가 이번 결정과 국민 의사를 수렴해 입법과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국보법 7조를 형법상 내란죄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독자적 존재 의의가 있다"고 언급하며 형법상 내란죄나 외환죄가 오늘날 우리가 처한 국가의 자기 안전과 방어에는 미흡하다는 종전 판례를 유지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1년 11월 출범 이후 국보법 폐지를 요청하는 40여건의 진정을 접수해 1년5개월 동안 검토 작업을 벌인 끝에 지난 24일 "국보법은 정권 유지를 위해 표현의 자유 등 인권을 억압한 악법"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법무부와 국회의장에게 폐지를 권고했다.

인권위 권고는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어 제각기 입장이 다른 정치권과 법무부 등 관련 기관의 대응이 주목된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입장

정치권은 국보법에 대해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폐지 후 형법 보완, 민주노동당이 완전 폐지, 민주당이 폐지 후 대체입법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폐지에 적극 반대하며 일부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폐지를 주도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은 야당 의원들에 대한 설득 작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정해진 당론은 없지만 인권위 권고에 부정적, 헌재 결정에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어 폐지보다는 개정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열린우리당에서도 소수 의원들은 폐지보다 안정적 개정에 뜻을 모으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태도 역시 엇갈린다.

진보적 단체들은 인권위 권고를 계기로 "이번에야말로 국보법 폐지의 적기"라며 정치권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 정치권이 반인권 악법인 국보법 폐지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개정이나 대체입법도 불필요한 논쟁이라고 못박았다.

반면 보수단체들은 국보법에 다소 문제가 있고 남북관계가 호전됐다는 국보법 논란의 배경에는 어느 정도 동의를 표한다.

하지만 휴전선의 군사대치 상태가 여전하고 남조선을 해방시키겠다는 북한 노동당 규약이 엄연한데 가상의 적을 앞에 두고 국보법을 폐지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각 주장의 논거

▲완전 폐지=첫째는 위헌성이다.

국보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에 반한다는 것이다.

둘째 형법이나 형사특별법규에 중복 규정이 있으므로 폐지돼도 국가 안보와 민주 질서 유지는 가능하다.

셋째 국보법은 1990년 제정된 남북교류협력법과 충돌하고 현재 제정이 추진중이 남북관계발전 기본법과 공존할 수 없다.

넷째 현행 국가보안법은 1960년 5·16 쿠데타로 제정된 반공법을 모태로 1980년 쿠데타 이후 설치된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합·제정돼 정통성을 잃고 있다.

▲개정 후 유지=국보법이 정권 유지 도구로 악용된다는 비판 속에서도 지금까지 존치된 것은 북한 체제가 아직도 남한을 공산화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현실에서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달라진 면이 없다.

반국가 단체 개념에서 북한을 제외한다면 우리 스스로 체제 전복 세력에게 안방을 내주는 꼴이 된다.

남북 화해 분위기로 실효성을 잃은 규정을 새롭게 검토하고 인권 침해 소지를 없애는 수준으로 개정하면 충분하다.

▲폐지 후 대체입법=국보법 주요 조항은 형법과 중복되거나 문구가 모호하며 시대에 맞지 않는 등 문제가 광범위하다.

폐지돼야 마땅한 실정이지만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대체입법이 필요하다.

폐지냐 존치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생산적 논의를 해야 한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사진: 재발족한 국가보안법 폐지 회원들의 가두시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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