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 오늘-정중부의 난

고려 의종 24년인 1170년 8월 30일, 왕이 장단(長湍) 보현원(普賢院)에 행차할 때 왕을 호위하던 무신 정중부와 이의방·이고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무신들은 왕을 수행하던 문신들을 학살한 뒤 개성으로 돌아가 요직에 있던 문신들을 다시 대량 학살하였다.

이날 이후 고려에는 90년 가까이 '무인시대(武人時代)'가 펼쳐졌다.

무인들의 반란은 당연한 결과였다.

건국 당시 과거제와 유교주의를 택한 고려는 자연스럽게 문치(文治)를 지향하게 됐고, 더불어 무인들보다 문인들의 지위가 더 높아졌다.

1014년에 있었던 최질·김훈 등의 반란이 1년도 안돼 실패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그러던 중 아버지(김부식)의 권세를 믿은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우고, 의종의 보현원 행차 때는 대장군 이소응이 젊은 문신 한뢰에게 뺨을 맞는 모욕을 당하면서 눌려 있던 무신들의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무신독재 정권이 확립되긴 했지만 무신 간의 반목으로 정중부는 1179년 경대승에게 살해되고, 집권한 경대승은 1183년에 병사하였다.

1196년 최충헌의 집권 후 4대 62년간 최씨 집안의 무단통치가 계속된 것을 빼곤 집권을 위한 음모와 살육이 이어지는 공포의 연속이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는 교만을 낳았고, 교만으로 쌓인 분노는 결국 피를 보고야 말았다.

▲1914년 독일 공군기, 파리에 폭탄 투하 (세계 최초의 공습) ▲1949년 최초의 국비유학생 6명, 미국 유학 ▲1961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결성 ▲1970년 계간 '문학과 지성' 창간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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