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범어동 풍경-(5)명변론

오랜만입니다.

아테네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지면이 없어 본의 아니게 뵙지 못했습니다.

그간 변호사 몇분을 만났는데 격려를 해주는 분도 있었고, 걱정을 하는 분들도 있었지요. 좀더 부드럽게 써달라는 당부가 있었는가 하면, 좀더 적나라하게 써달라는 주문도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바람직할지는 고민을 해야겠지만, 어쨌든 이 난을 통해 법조인과 대중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남긴 명변론에 대한 얘기입니다.

명변론은 단순한 후일담에 그치지 않고, 재판 결과와 관행까지 바꾸어놓는 엄청난 결과를 낳곤 하지요.

지난 5월 향년 81세로 타계하신 고 최상택 변호사의 일화입니다.

1980년대에는 일정 횟수의 동종전과가 있으면 보호감호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는 '사회보호법'이 마구잡이로 남발되곤 했지요.

당시 최 변호사는 3만원 상당의 물건을 훔친 피고인을 변호하고 있었지요. 고지식한(?) 검사는 이 피고인에 대해 사회보호법을 적용해 '징역 5년, 보호감호 7년'을 구형했습니다.

지금으로는 턱도 없는 얘기겠지만, 불과 20년전만 해도 시대상황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던 시절이었지요.

최 변호사는 이때 법정에서 유명한 변론을 남깁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딱 두번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6'25때 인민군 대포소리 때문에 놀랐고, 그 다음으로 오늘 검사의 구형을 듣고 또한번 놀랐습니다.

검사의 구형은 결국 3만원 짜리 물건을 훔친 사람을 12년간 가두어 달라는 말씀인데,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천만원 대의 사기, 횡령이나 뇌물범죄에 비하면 가당치도 않은 것 아닙니까?"

최 변호사는 느릿느릿하면서도 논리적인 말투로 검사의 얼굴을 시뻘겋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다른 명변론을 남긴 분은 국회의원을 두번이나 지낸 유수호(73)변호사입니다.

1978년 도교육청 사무관이었던 허모씨가 위조 교사자격증 100여장을 돈받고 팔았다가 적발돼 엄청난 파문을 빚었습니다.

그당시 '가짜 교사'들이 학생들을 명문대에 합격시키는데 '진짜 교사'보다 더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해 그 파장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때 유 변호사는 법정에서 "가짜가 진짜보다 훨씬 낫습니다.

학생지도 실적에 우수한 부분이 많으니 선처를 바랍니다"라는 변론을 해 법조인들로부터 상당한 공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유 변호사는 감약고저가 담긴 특유의 목소리에 열정적인 톤으로 이같은 명변론을 남겼습니다.

변호사들의 맹활약은 다음주에도 계속됩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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