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라진 가슴, 가족사랑으로 채워"...유방암 투병 김학순씨

항암·방사선 치료비 막막...식사 못해 죽으로 끼니

"딸이 에미 살린다고 애기 업고 강가에 나가 잡은 물고기로 만든 붕어즙이라우."

결혼 뒤 36년간 날품팔이 등으로 생계를 이으며 고생하던 한 어머니가 최근 유방암에 걸려 고통 속에 지새다 멀리 시집간 딸(32)이 보내 온 작은 상자를 부여잡고 그간의 설움을 씻어내고 있었다. 31일 오후3시 남구 대명3동의 김학순(58)씨 집. 머리에 알록달록한 보자기를 두른 김씨는 상자를 꼬옥 끌어안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경기도로 시집간 딸이 보내온 상자에는 수십봉지의 붕어즙이 포개져 있었고 김씨에게는 그 어떤 선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망의 빛'이었다. 딸은 고향 경남밀양을 떠나 낯선 대구에 시집와 고생하다 암에 걸려 지난달 동산의료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 받는 어머니의 쾌유를 위해 보낸 것.

김씨가 눈물을 멈출 수 없는 것은 딸이 붕어즙을 만들어 보낸 과정 때문. 사위가 막노동일로 겨우 먹고사는 형편이어서 어머니를 위해 어떤 경제적 도움도 줄 수 없던 딸이 직접 강가에 나가 잡은 붕어, 잉어 등을 고아 만든 것.

김씨는 "아이를 업고 이틀 동안 강에서 물고기 잡느라 얼굴이 다 그을렸다는 딸아이의 전화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고 '엄마, 이렇게 밖에 도울 수 없어 미안해'라며 흐느껴 에미 가슴이 미어질 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같은 딸의 정성도 잠깐뿐일 수 밖에 없다. 유방암 2기 판정을 받고 왼쪽 가슴을 도려냈지만 앞으로 수십 차례 받아야 할 항암 및 방사선 치료비 마련이 막막할 뿐이기 때문.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로 선정돼 지원받는 월 15만원과 김씨 부부가 종이줍기로 버는 하루 몇 천원으로는 항암치료비 등의 마련은 고사하고 끼니 때우기도 벅찬 것. 결혼 뒤 냉차장사를 시작으로 붕어빵 장사와 종이줍기 등 안해 본 일이 없을 만큼 세파를 견뎠지만 이번만큼은 녹록지 않아 한숨만 나올 뿐이다.

월세 20만원짜리 집에서 남편과 하루하루 보내는 김씨는 마당앞에 수북이 쌓아둔 종이뭉치만 안타깝게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종이상자들을 짊어메고 길을 나서면 몇천원을 벌 수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

남편 조동수(67)씨는 "주변 도움으로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항암치료를 두번 받았는데 이젠 큰일"이라며 "아내가 항암치료 후 자꾸 빠지는 머리카락 탓에 보자기를 두른 모습을 보면 뭔가 해야 하는데 허리디스크와 일이 힘에 부쳐서 벌이를 못해 미안할 따름"이라며 애를 태웠다.

남편은 제대로 식사를 못하는 아내를 위해 매일같이 문도 열지 않은 죽집 앞에서 죽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 고작이어서 더 안타깝다. 김씨는 "입원한 동안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이 많다는 것을 보면서 '병이 나으면 돈으로는 어렵겠지만 몸으로라도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는데 마음 속 다짐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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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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