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하늘, 이름모를 들꽃들…. 가을의 전령은 언제인지 모르게 우리 곁에 성큼 다가 서있다.
누구 하나 씨 뿌리고 돌보지 않았지만 넓은 초원은 이제 울긋불긋 화려한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 곰배령. 산마루가 마치 곰의 배 모양이다.
질박한 지명과는 달리 작고 앙증맞은 자생식물들의 천국이다.
해발 1,100m 고원은 벌써 꽃대궐. 병풍처럼 버티고 선 산 아래로 구름과 바람을 벗삼아 살랑이는 꽃들로 길손의 마음이 마냥 흔들린다.
지난 여름, 강한 땡볕에도 꿋꿋하게 이겨낸 강한 생명력으로 이제 꽃들은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곰배령은 설악산의 남쪽 줄기인 점봉산의 8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곰배령에 오르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울창한 나무 그늘을 따라 4㎞가량 평탄한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오솔길 옆으로는 내내 수정처럼 맑은 계곡물이 졸졸졸 흐르고,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간지른다.
곰배령 산행은 진동리 설피마을에서 시작된다.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설피마을은 해발 700m의 고지대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형 특성상 한겨울에 '설피(옛날 눈밭에서 신던 신발)' 없이는 못사는 동네라고 '설피밭'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마을에서 30분 정도 들어가면 산 중턱에 오지마을인 강선마을. 다섯 가구가 사는 이 마을의 재롱둥이는 단연 강아지들이다.
하얀 어미개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들이 등산객을 반긴다.
재롱이 여간하지 않다.
여기서 1시간가량을 중간중간 허리를 펴가면서 오르면 곰배령이다.
오솔길 옆으로는 국내 최대의 자생식물 군락지라는 명성답게 자생식물들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곰배령에 이르면 갑자기 시원스런 바람이 땀에 얼룩진 이마를 세차게 두드린다.
세상이 환해지는 듯하다.
저 멀리 떠다니는 뭉게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한두 사람 지날 만한 오솔길을 빼놓고는 온통 알록달록한 꽃들과 들풀이 초원을 뒤덮고 있다.
산림대장군·산림여장군 장승이 초원을 굽어보며 지키고 서 있다.
가을 문턱, 첩첩산중 곰배령에는 들꽃이 가을을 물들이고 있다.
대구에서 곰배령 가는 길은 멀다.
그래도 화려한 들꽃잔치를 본다는 생각에 견딜만 하다.
중앙고속도로 홍천IC에서 내려 속초 방향 44번 국도를 탄다.
철정 삼거리 검문소에서 우회전, 451번 지방도로를 다시 갈아탄다.
계속 진행하다 인제 상남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약 15㎞를 달리면 하천을 건너 오른쪽으로 방태산 자연휴양림 길이 나온다.
휴양림 입구를 지나 계속 가면 진동계곡길에 이르고 포장공사가 한창인 쇠나드리를 지나 상부댐 삼거리에서 왼쪽 비포장길로 3㎞가량 들어가면 '곰배령 가는길'이라는 푯말을 만나게 된다.
곰배령으로 오르는 길은 귀둔과 한계령 휴게소 뒤도 있지만 이 길이 가장 평탄해 수월하다.
곰배령을 보려면 원칙적으로 인제 현리에 있는 인제 국유림관리사무소(033-461-5008)에서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 수도 있다.
글.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사진: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 아래 자리한 곰배령. 이름모를 자생식물들이 가을로의 여행을 재촉하는 듯 지천을 이루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