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安重根) 의사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안 의사의 아명은 응칠(應七). 한학(漢學)을 수학했으나 오히려 무술에 더 열중했고,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며 신식 학문을 접했다.
1904년에는 홀로 평양으로 가서 석탄상을 경영했으나 이듬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상점을 정리한 돈으로 1906년 삼흥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기울어져만 가는 국운에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안중근은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활동에 참가하였다.
독립군 사령관 자격으로 국내로 침투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고, 그것이 실패하자 망명투사들이 발행하는 '대동공보'에서 탐방원생활을 하기도 했다.
1909년에는 동지 11명과 함께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맹세하며 손가락을 끊는 이른바 '단지(斷指) 동맹'을 했다.
단지 동맹후 안 의사는 그 해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상과의 회담을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암살계획을 세웠고, 10월26일 그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이듬해 2월 재판 결과 사형이 선고되었고, 3월26일 형이 집행되면서 31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국인(大韓國人)으로서의 지조를 끝까지 잃지 않고 의연히 죽음을 맞이해 애국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1937년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 사망 ▲1666년 영국 '런던 대화재' 발생 ▲1945년 일본, 무조건 항복문서에 서명 ▲1981년 미국, 중성자탄 생산 시작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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