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회화는 언제나 돌아온다

"앗따 요거시 머시당가?...참말로 거시기 혀 불제…."

일정에 없이 들른 듯 전시장의 노인 둘은 그림 앞에서 연신 놀랍니다. 생소한 풍경들이 새삼스러웠나 봅니다.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삶의 풍경'이란 제목으로 시 한편을 가지고 다양한 양태의 일상을 '회화'로 둔갑시켜 보여줍니다. 시인 황지우의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라는 시가 그것입니다.

문학이 회화적 서술로 옮겨가는 흥미와 평면의 영원성을 말해 주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붐비는 전시장에서 낡은 소파에 앉았지요. 그러나 품위를 잃지 않은, 한 시절 고급했을 소파는 이 전시의 중심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내 그림의 문학적 수사나 자의적 해석을 시작한 까닭을 소급해 보기도 했습니다.

화중유시(畵中有詩)라고 그러지요. 그림 속에 시가 들어가 현재를 말하는 듯 합니다. 작위가 숨겨진 가죽소파는 찢어진 속을 드러내 자기 고백 같은 풍경을 분홍빛으로 그려 놓았지요. 몸의 부재는 공허한 싹을 키우고 실체가 빠진 옷은 허무한 현실 같습니다.

숲 속의 아스라한 빛 사이에 몽롱한 눈의 소년, 그리고 하나의 소파. 작가는 '괘종시계가 내 여성을 사각사각 갈아먹는 소리를 조용히 듣는다'는 식입니다. 안락함을 부추길 듯한 살찐 소파는 정작 없는데 두 남녀의 엉킴만이 오롯이 드러납니다.

'하루가 또 이렇게 나에게 왔다…. 사실은 비닐로 된 가짜 가죽을 뒤집어쓰고….'

시인의 통찰을 붓의 각질을 벗겨 화가들이 얘기합니다. 삶과 무관하지 않은, 불온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평면 위에 재생시켜 놓습니다.

미디어, 영상, 설치 등 개념이 잠식한 것처럼 보이는 작금에 홀대의 시간을 견디며 '회화'가 돌아온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번듯한, 그래서 더욱 사려 깊어 보이는 미술관에서 텍스트 하나를 읽은 느낌입니다.

권기철(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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