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색의 T셔츠에다 어깨밑까지 머리를 찰랑거리는 한 아가씨가 녹색 당구대위의 볼을 보며 말없이 서 있다.
이내 당구대로 강하게 스트로크를 날리자 9개의 공이 서로 부딪치며 춤 추듯 퍼진다.
이윽고 터지는 동료들의 '나이스 큐!'
5일 오후 대구시 서구 내당동 아카데미당구장. 20대 여성 직장인들이 여기저기서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사각의 당구대를 바라보며 당구경기에 여념이 없다.
한 아가씨는 절묘한 코너웍과 회전을 만드는 세워치기(일명 맛세이), 끌어치기 등을 시도하며 남성 당구마니아들의 시선을 자극했다.
이들은 모두 대구의 포켓볼 동호회인 '풀러즈(Poolers)' 회원들.
1년 구력의 김선혜씨(26·풀러즈 회장)는 "남다르면서도 스트레스 풀기에 좋은 레포츠를 생각하다 포켓볼을 하게 됐다"며 "평일에도 당구채를 잡지 못하면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말했다.
회원중 고참인 정유진(33)씨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이다.
4개월 전 동생의 권유로 포켓볼을 시작한 그녀는 누우면 천장에 당구공이 보일정도로 한창 물이 올랐다.
"힘이 별로 들 것 같지 않아 시작했는데 의외로 운동이 많이 되고 승부욕과 자신감이 길러지는 것 같다"고 당구를 예찬했다.
경력 3년의 직장인 김은영(25)씨는 "목표로 한 기간에 원하는 기술을 익히는 재미와 성취감은 해보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 성격이 활발해진 것도 덤이죠."라며 당구를 예찬했다.
4년전 인터넷 동호회로 출발한 풀러즈(Poolers)는 150여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직장인이 대부분이고 이 가운데 절반은 여성.
이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정기모임이나 연습게임을 갖고 정보교환, 친목도모를 한다.
경기날에는 상품을 걸어놓고 넉다운 토너먼트방식으로 경기를 갖거나 등급 결정전 및 자체 랭킹전을 수시로 실시하고 있다.
한때 2천여개에 육박하던 대구의 당구장은 외환위기 이후 격감, 300여곳으로 줄었다가 최근 다시 당구열기가 살아나면서 500여개 클럽으로 늘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동호회는 풀러즈를 비롯해 '대구사랑 당구사랑 동호회', '포지션'등과 각 대학 포켓볼 동아리가 있다.
요즘 당구장은 담배 연기 자욱하고 자장면과 불량끼 많은 청소년들을 떠올린다면 구닥다리로 취급받는다.
대학에 당구학과도 생기고 당구클럽에서 과외를 받는 세상이다.
남성만의 공간이었던 당구장을 여성들이 침범한지는 오래이고 웬만한 당구장은 쾌적한 시설에다 PC와 사물함까지 갖춘 휴게실을 두고 있다.
지역에서 생활당구연합회를 창립하고 동호인클럽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윤석수씨(아카데미당구클럽대표)는 "4각의 당구대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그리고 쾌감까지 얻을 수 있는 당구는 가장 손쉽게 또 남녀노소가 함께 할 수 있는 건전한 레포츠다"고 설명했다.
이춘수기자 zap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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