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동길의 베트남 여행기-(3)철대문마다 채워진 자물쇠

배낭여행으로 베트남에 머문 것이 그럭저럭 100일이 지나고 있다.

메콩델타를 여행하고 호치민시를 접어드니 소음과 굉음, 그리고 매연이 귀와 코를 자극한다.

오토바이 물결은 꼭 새끼줄로 엮어 놓은 듯이 계속 쉴 틈 없이 흘러가기만 하고 여기저기에서 떠들썩하고 활기찬 모습들이 경제부흥을 재촉하는 듯 보였다.

주민들의 생활모습 또한 삶의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듯했다.

그러나 좁고 길게 높게 지어진 주택은 멀리서 언뜻 보면 빌라형 주택을 연상케 하지만 직사각형의 성냥곽 모양의 주택구조가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다.

현관에는 육중하고 음산한 철 대문이 굳게 닫혀 있으며 담장에는 쇠창살, 거기다 이중삼중 주먹 만한 자물쇠가 채워진 것이 이색적이다.

저녁에 잠들라치면 이웃의 철 대문 여닫는 소리와 자물쇠 채우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가 일쑤다.

너나 할 것 없이 체면을 무시한 채 이 문화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밤잠을 싫어하는지는 몰라도 낮보다 저녁이면 오토바이 소음, 철 대문, 자물쇠 소리가 더 요란해진다.

이웃의 수면방해쯤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귀동냥에 의하면 베트남은 절도, 매춘, 마약 등 사회적 범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며 부정, 부패, 뇌물 관행 역시 공공연하게 자행된다는 것이다.

성 풍속 역시 매우 빠른 걸음으로 변화의 움직임 속에서 한몫하며 낙태율이 어느 나라 보다 높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사회적 범죄는 심각해지고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죄의식에서 크게 문제를 삼지 않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주민들의 활동 모습이 매우 자유스럽고 친절하고 밝은 표정이 생각보다 괜찮은 나라로 첫 인상을 심어준다.

또한 친근감을 가지게 했다.

이 좋은 감정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런데 철 대문과 자물쇠는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이는 그들의 폐쇄적인 삶을 연상케 하며, 과거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우리도 지난날 흉물스러운 담장 철조망이 눈에 거슬린 적이 많았음을 그 시대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이것 역시 초대하지 않은 손님맞이를 거부, 즉 방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테니까.

젊은 시절 군 제대 무렵 청혼이 들어와 장인될 어른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늦가을 해질녘 초대에 응했다.

선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어른으로부터 많은 덕담을 귀담아 듣고 하직인사 후 마루를 내려서니 멋지게 잘 닦아 놓은 새 군화가 보이질 않았다.

군화가 탐이 나서 불청객이 슬쩍해 간 것이다.

내가 집안으로 들어설 때 대문을 잠그지 않은 것이 실수였고, 때문에 어른들만 당황케 한 적이 생각난다.

1963년 당시 옷가지, 신발, 자전거 등을 훔쳐가는 좀도둑이 우리 주변에도 흔히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뿐인가. 불청객의 월담을 막기 위해 담장에 철조망을 얹고 철 대문에다 자물쇠, 더 나아가 방범견까지 있는 집이 많았다.

베트남에서 지난날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해 그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

베트남은 아직도 대중적인 문화생활이 열악하고 빈부의 격차가 심한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길거리에서, 관광지 주변에서, 호텔 앞에서 손을 내미는 구걸꾼의 모습을 쉽게 접하게 된다.

자물쇠가 채워진 철 대문 집들은 아마 사유재산의 손실을 방지하려는 힘겨운 자구책이 아닌가 싶어 묘한 감정이 가슴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어느 여행가이드북을 보니 좀도둑이 노리는 물품을 나열해 놓고 있으며 지갑, 핸드백을 비롯한 신변용품 보호에 주의를 하라고 친절을 베풀고 있다.

특히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두둑한 지갑을 꺼내는 것은 더욱 위험하고 절도범의 표적 1호라는 것이다.

필자도 경험한 바 있지만 낯선 땅에서 도난은 황당할 뿐이다.

낯선 땅에선 호주머니를 철 대문과 자물쇠로 잘 보호하는 것이 상책이다.

베트남의 집 구조가 우리와는 달라 무어라 표현하지 못할 만큼 답답함을 느꼈지만 왜 철 대문과 자물쇠 문화가 존재하는지 이유를 대충 알게 되었다.

전 계명대교수·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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