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해마다 9월 이 맘 때면 가산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 일대에는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보기만 해도 숨이 차오른다.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영동고속도로 장평IC를 빠져 나와 봉평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소설속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우선 봉평장터(2일, 7일 장이 선다)가 눈에 들어온다. 허생원과 같은 장돌뱅이들이 난전을 펼치던 곳이다. 봉평장터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5일장 풍경이지만 메밀꽃이 만개할 시점에 이곳에 도착하면 하얀 메밀꽃 향기에 취해 새롭게 보인다. 특히 10일부터 이곳에서는 효석문학제가 열릴 예정으로 있어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손님 맞을 채비가 한창이다.
장터 옆으로 봉평중학교. 그 앞에 가산공원이 있다. 풍경화처럼 조용하게 꾸며져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가산 공원 안에는 소설의 주인공들인 장돌뱅이들이 시원하게 회포를 풀던 충주집이 있다. 동이와 허생원이 다투던 곳이다. 찢어진 창호문과 흙담을 보는 순간 머리 속에서는 어느새 허생원과 조선달, 동이가 만들어내는 장돌뱅이들의 흥겨운 정취가 그려진다.
효석문화제 주 행사장 옆으로 흥정천이 흐른다. 동이가 물에 빠진 허생원을 등에 업고 건너며 혈육의 정을 느끼던 개울이다. 개울 건너편에는 성서방네 처녀와 허생원이 사랑을 나누던 물레방앗간이 있다. 허생원이 메밀밭 위로 쏟아지는 하얀 달빛을 피해 들어섰다가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쳐 '기막힌' 하룻밤 인연을 맺은 물레방앗간이다. 돌돌돌 떨어지는 물 떨어지는 소리 속에 허생원의 거친 숨소리가 묻어난다. 물레방앗간 옆 나귀는 달빛 고운 보름달이 뜨면 금방이라도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낼 것만 같다.
물레방앗간 오른쪽으로는 온통 메밀밭이다. 메밀밭이 산허리까지 들어차 하얀 꽃이 지천이다. 온통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바로 그 풍경이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메밀꽃이 눈부시다. 흰꽃이 구름처럼 펼쳐진 들녘.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가을을 알린다. 이효석의 표현대로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그대로였다.
여행객들은 안개꽃보다 더 예쁜 메밀꽃을 감상하기 위해 얼굴을 바싹 갖다댄다. 메밀꽃이 만개하면 꽃잎이 유난히 하얗게 보여 마치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아 누구나 탄성을 지르게 된다.
물레방앗간 옆 산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산 중턱에 자리한 이효석문학관에 다다른다. 문학관은 그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볼 수 있는 문학전시실과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문학교실, 학예연구실 등으로 나눠져 있다. 이효석 문학전시실에는 생애와 문학세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재현 창작실, 봉평장터 모형, 영상물 등을 배치하여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문학교실에서는 영상물을 시청하고 문예행사 관람이 가능하며, 학예연구실에서는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전시실에는 유품과 초간본 책, 이효석의 작품이 발표된 잡지와 신문 등을 전시해 놓았다. 영상관에서 효석의 문학을 느끼고 그 당시 생활상, 그리고 성격과 내면세계를 볼 수 있다. 여유가 있다면 기념관 뒷동산에 마련된 벤치에 호젓하게 앉아 효석의 작품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허생원이 평생 간직한 애틋함이 아련히 느껴질 지도 모른다.
문학관에서 1km 남짓 들어가면 1930년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는 가산의 생가터도 만날 수 있다. 가는 길에는 역시 메밀밭이 펼쳐져 있다. 내려올 때는 천천히 걸으며 주변의 메밀밭을 여유있게 관람하는 것도 좋겠다.
문학의 감동과 자연의 향기, 그리고 전통의 향수를 담고 있는 효석문화제는 10일부터 19일까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문화마을 일대에서 펼쳐진다.
◇주위 들를만한 곳
행사장에서 승용차로 10여분 흥정천 상류로 올라가면 계곡가에 자리잡은 허브나라가 있다. 허브로 만들은 차와 요리를 맛볼 수 있고, 100여종의 각종 허브 공예품이나 방향제 등도 구입할 수 있다.
이효석의 문학마을에서 문학의 상상력을 한껏 키웠다면 이 곳 허브나라는 동화가 주는 상상력을 충전시키기에 충분하다. 흥정계곡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물소리에 마음의 때를 다 씻고 나면 그 위에 허브 향기가 후각을 통해 가슴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아기자기한 허브농원을 돌아보는 것 외에 농장 끝자락에 있는 평창갤러리에서 차를 마시며 주인 김양식씨가 찍은 사진을 감상하는 것은 덤이다.
허브나라에서 나와 횡성쪽으로 1km쯤 가면 무이예술관이 있다. 무이예술관에서는 메밀꽃 그림과 야외 조각전, 도예전을 감상할 수 있고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운동장엔 갖가지 대형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도자기를 굽는 전통가마 등 예술가들의 작품활동 장면을 직접 볼 수 있다.
폐교된 덕거초교에 가면 연극도 볼 수 있다. 10일부터 19일까지 오후 7시 열리는 달빛 극장이 바로 그것이다. 효석문화제 오픈 행사의 일환으로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재창조한 연극 '리어'를 공연한다.
덕거 초교 운동장 한쪽 잣나무숲 앞에 야외극장이 만들어지고 운동장 대부분은 메밀밭으로 변했다. 교실은 축제기간 카페로 쓰인다. 기간 내 유명 인사들이 메밀꽃 필 무렵, 어린왕자, 별 등의 책을 읽어준다.
최재수기자 biochoi@imaeil.com
사진.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가는 길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 남원주 지나 영동고속도로- 장평 IC에서 빠져나온 뒤 우회전- 봉평 방향으로 10km쯤 가면 봉평이 나온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