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잊혀진 문화유산-포항 남파대사 비

"마을회관이나 노인정 하나 더 짓는 것보다 그 마을의 귀중한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비각 하나 더 짓는 게 바람직한 삶의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기자가 옛 석남사(石南寺) 터에 방치되어 있는 '남파대사(南坡大師) 비(碑)'(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리 소재)를 귀중한 문화재라고 깨닫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솔직히 그전까지는 향토사가이자, 장기가 고향인 이상준(45·포항시 남구 오천읍)씨가 "하루 빨리 비각을 세우고 고증을 해야 한다"며 수없이 내뱉던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기자는 이씨와 함께 등산을 하며 '남파대사 비'를 몇차례 보았지만 '남파대사'는 물론 '비문'을 쓴 '계오(戒悟)'란 스님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기사화'하기가 사실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 같은 고민을 해결하는 한편 비석을 하루 빨리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해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된 것은 향토사가이자 포항정보여고 국사담당 교사인 황인(54)씨가 보내준 자료 덕분이었다.

황씨는 탁본한 비문을 한학자에 부탁해 해독하는 한편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비문을 쓴 '계오'라는 스님에 대해 어느 정도 소상한 자료를 수집했다.

비문에 따르면 남파대사는 조선 영조 경신년(1740) 장기에서 태어나 순조 정축년(1817)에 향리인 장기 석남사에서 입적(향년 78세)한 조선조 때 고승이다.

이름을 화묵(華默), 자를 자은(自隱)이라 했으며 남파는 호다.

속성은 이(李)씨로 12세때 삭발, 용계(龍溪) 대사로부터 계(戒)를 받았다.

화엄경 십지론의 대조종으로 승과에 합격한 후 나중 대선과 대사에 올랐으며, 밀양 표충사 수호도총섭(守護都總攝)을 지냈다.

특히 조선조 때 번창한 선(禪)·교(敎) 양종의 맥이 보광대사로부터 시작해 회당대사 → 서악대사 → 용계대사 → 남파대사로 이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남파대사는 조선조 때 선·교 양종을 두루 섭렵한 화엄경의 조종으로 일컬어질 정도의 고승이었다.

하지만 '남파대사 비'의 중요성은 남파대사의 유일한 옛 비석이라는 것과 함께 비문의 글씨 또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남파대사가 입적한 다음해(1818년) 비문을 쓴 '계오'라는 스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 인명대사전 등 각종 자료에 따르면 '계오(1773~1849)'는 조선조 명필로 속성은 안동 권씨, 자는 붕거(鵬擧), 호는 월하(月荷)이며 11세에 출가한 후 시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60세 이후에는 수행에 방해가 된다 하여 붓을 놓고 참선에만 매진하다 가지산 석남사에서 입적(77세)했다.

저서 12권이 있으나 '가산집(伽山集)' 4권만이 전하며, 현 석남사에 초서체 '천자문' 판각이 보관돼 있다.

이같이 '계오' 스님 또한 남파대사 못지 않게 조선조 때 시문에 능한 고승이었다.

황씨는 "남파대사비는 남파대사라는 대덕 고승을 기리는 유일한 옛 비석일 뿐 아니라 비문의 글씨 또한 귀중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며 "하루빨리 비각을 세워 보호하는 한편 문화재적 가치 고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남파대사 비(높이 170cm×폭 80cm의 화강암)'는 장기면 소재지에서 하천길을 따라 서쪽으로 6km쯤 떨어져 있는 괴정마을(방산2리) 서쪽 산골짜기(묘봉산)에 있다.

즉 석남사 옛 절터에 비각도 없이 방치되다시피 잡초 속에 홀로 서 있는 것. 둘레에 쳐져 있던 돌담장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고 불에 그을리고 일부 비문의 글씨가 떨어져 나간 것은 200여년간 온갖 풍상을 겪은 상흔이다.

한편 '동국여지승람'에는 장기현 묘봉산(妙峰山 · 해발 261m)에 '석남사' '평등사' '영취사'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지금 묘봉산에는 이들 절이 없다.

단지 '영일군사'에 조선조 철종 말에 이 일대에 산불이 있었다고 하니 그때 석남사를 비롯한 이 일대 사찰들이 소실되었다고 추정될 뿐이다.

이 마을에서 3대째 살고 있다는 장두천(65)씨는 "과거 석남사에 스님이 많아 아침, 저녁으로 절에서 쌀 씻은 뜨물이 개울을 타고 10리 아래 마을까지 내려왔다"며 "옛 어른들로부터 석남사가 과거 엄청나게 큰 절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남파대사 비 옆에는 '거사(居士) 김도진(金道振) 공(公) 보살(菩薩) 노파(老婆) 김영이(金令伊) 송덕기념비'란 조그만 송덕비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두 남녀가 지난 79년까지 남파대사 비 옆에 거처하면서 남파대사 비를 지켜준 것을 고맙게 생각해 마을에서 송덕비를 세워줬다고 했다.

황씨는 "특히 계오 스님에 대한 글씨를 연구하기 위해 전국의 금석학 연구가들이 이곳을 찾는 만큼 포항시는 하루빨리 보호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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