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채한 대기자의 책과 세상-아,입이 없는 것들

늘 입이 탈이다.

탈이 난 입들이 나라 곳곳에 넘치고 있다.

탈 난 입은 조용히 닫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늘 펄펄 끓는 물솥 뚜껑처럼 시끄럽다.

물론 탈이 나지 않은 입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입들은 웬만해서는 사람들의 귓속에 먹혀들지 않는다.

오로지 탈 난 입들만 먹혀드는 세태. 입이 탈이 났는데도 말이다.

탈 난 입들. 정작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것은 이런 탈 난 입들이다.

그런 입들을 받을 박물관이 세상에 있는지는 몰라도.

속이고 거짓말하기, 뒤집어엎어 버리고 그러다 속이 상하면 으르고 윽박지르기, 은근히 협박하고 알아서 기도록 하기, 요구 조건이 들통 날 때 나더라도 지금은 발뺌하기. 이같은 수법이야 한도 끝도 없다.

재주아치와 꾀퉁이들이 설치는 무대에서는 말이다.

링컨, 그도 대통령이었다.

비록 미국이었지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사람을 잠시 동안 속이거나 몇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없다"고. 입이 탈 나기 쉬운 윤똑똑이들에게 하는 말 같지 않은가. 그렇지만 탈난 입이 자기 입 탈 났다고 하는 입이 있을까. 별로 없을 게다.

우리시대에는 이게 탈이다.

그러면서 탈 난 입들이 요구하는 것은 극과 극. 찬성이냐 반대냐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논의의 여지가 없다.

양보나 이해를 구하는 일이 없다.

상대를 해석하는 일들이 칼날 같다.

시퍼렇다.

벼르고 벼른 끝에 안되면 깨물고. 결국 치고 박고.

'석화의 빛 중에서 장단을 겨루니 대체 얼마를 살려고 그러는가? 달팽이 뿔 위에서 자웅을 겨루니 이 땅이 얼마나 되기에 그러는가?'

(石火光中, 爭長競短, 幾何光陰.

蝸牛角上, 轎雌論雄, 許大世界.)

채근담 후집에 나오는 말이다.

흔하게 인용되는 글귀지만 이 말이 늘 좋다.

왜들 탈 난 입 고칠 생각 않고 싸워 이기려만 드는지 모를 일이다.

대체 얼마를 살려고, 정말이지 이 땅이 얼마나 되기에 말이다.

그래서 이 글귀가 좋다.

탈 난 입 꿰매는 바느질 같은 느낌이 있어 좋다.

이성복(李晟馥). 시인, 계명대 교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 '정든 유곽에서'등 언제나 읊을수록 가슴을 뛰게 만들어 주는 시집들. 지난해에 내놓은 그의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도 읽어보면 혼자 가슴이 뛴다.

100편이 넘는 시들을 다 읽으면 그제사 철철 넘치는 나 혼자만의 열정들. 그게 뭘까. 세상 살아가는데 그 열정들은 댓돌이나 섬돌이 될까.

아, 너도 떨고 있구나 기울어진

담벼락 아래 잠든 강아지 뒷다리,

몇 며칠을 땅바닥에 쓰러진 너의

목덜미를 구둣발로 짓이기던 사내,

나였구나 그래 내 마음 흐뭇했던가,

그리 속시원했던가, 그래도 찬물에

밥 말아 먹고 장구 치며 떠오르던 해야,

너는 또 내 발길에 차인 지 몇 해째냐

('아, 너도 떨고 있구나' 전문)

기껏 강아지의 뒷다리나 목덜미를 발로 짓이기며 웃는 못난 사람. 이건 숫제 입뿐 아니라 발까지 탈 난 사람 짓이려니. 그래서 까닭 없이 우수에 젖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는? 그러면서 끌어당기는 힘. 그것이 찬물에 밥 말아먹는 힘이려니. 시인은 책 머리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난 세월 씌어진 것들을 하나의 플롯으로 엮어 읽으면서, 해묵은 강박관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길은 돌아 나올 수 없는 길, 시는 스스로 만든 뱀이니 어서 시의 독이 온몸에 퍼졌으면 좋겠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것은 곤혹의 지지부진이다"라고. 그는 이미 시의 독이 온몸에 퍼진 시인이다.

어저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라는 시집을 찾았으나 보이질 않아 서점에 갔다.

지난 80년 첫 출판된 시집인데도 서점에는 반듯하게 꽂혀 있었다.

지난 4월 발행된 것으로 34쇄.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이성복의 시에 미치는가. 아마 그의 시에 입이 있다면 그 입이 탈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탈은커녕 그의 몸은 더욱 시의 독으로 퍼져 갈 것이다.

어찌하여 넌 내게 미쳤니?

어떤 불길한 기운이 네 뇌수에

사랑의 독을 풀었니?

때로 나는 한 마리

체체파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하여 넌 내게 미쳤니?

어떤 불길한 기운이 네 뇌수에

사랑의 독을 풀었니?

(어찌하여 넌 내게 미쳤니' 전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